아파트 입주민, 경비원에 마음대로 허드렛일 못시킨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9일 14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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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2018.1.5/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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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부터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차량 대리주차나 택배 배달 등과 같은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이 금지된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또 아파트 관리소장이 경비원에게 각종 동의서를 돌리거나 전기·가스 등의 검침과 같은 업무를 시키는 것도 금지된다. 이를 어기면 해당 경비업체는 경비업 허가가 취소되는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번 조치는 아파트 입주민으로부터 지속적인 욕설과 폭행 등을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비원 사례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도입됐다. 하지만 경비원의 업무가 줄어들면서 고용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경비원 갑질 막는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내용으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9일 입법예고했다. 10월 21일 시행될 예정인 개정안은 아파트 경비원이 고유의 경비 업무 외에 할 수 있는 일로 청소 등 환경관리(①)와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리·단속(②), 위험·도난 발생 방지 목적을 전제로 하는 주차 관리(③)와 택배 물품 보관(④) 등 4가지로 제한했다.

반면 아파트 시설 수리 업무 보조나 각종 동의서 수령 등 관리사무소 일반 사무 보조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또 개인차량 이동 주차나 택배물품 세대 배달 등 입주민의 개별적인 요구에 따라 벌어지는 업무도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아파트 경비원에게 허용된 것 이외의 업무를 추가하더라도 이번 시행령에 따라 허용한 4가지 업무만 수행할 수 있다.

일반적인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 경비 업무 이외에 입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잡다한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과정에서 갑질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다만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경비원의 경우 경비에 국한됐던 업무량이 늘어날 수 있게 됐다.

국토부는 개정안에서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에 간접흡연에 관한 사항을 추가하도록 했다. 아파트 실내에서 담배를 피워 입주민 간에 간접흡연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관리규약은 시도지사가 정하게 돼 있다.

또 아파트 단지 규모에 상관없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및 감사를 주민 주표로 뽑도록 했다. 현재는 500채 이상 단지에서만 직접 선출하도록 돼 있다.

김경헌 국토부 주택건설공급과장은 “이번 개정안은 아파트 경비원의 처우개선을 유도하고, 간접흡연 피해 방지 등을 통해 입주민의 권익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 경비원 죽음 몰고 간 입주민 징역형
이번 조치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 최모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입주민 심모 씨는 2심에서도 징역 5년형의 중징계 처벌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6-3부(부장판사 조은래·김용하·정총령)는 5월 26일 심 씨(50)에게 1심과 동일하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심 씨의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이 맞다고 봤다. 재판부는 “심씨는 항소심에서도 여전히 보복 목적의 상해·감금은 없었다며 범행 일부를 부인하고, 생전 망인의 녹취록을 믿을 수 없다고 다투고 있다”며 “그러나 피고인이 부인하는 범죄 사실은 녹취록뿐 아니라 목격자, 112 신고내용,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최 씨에게) 확인하려 했다’는 피고인 스스로 진술만 해도 유죄 증명이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현재 상황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 탓, 피해자의 친형 탓, 입주민 탓, 언론 탓, 경찰 탓 등 오로지 남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며 “수차례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고만 하고, 피해자나 언론 탓만 하며 자기 합리화를 꾀하고 있는 이상 이런 반성문으로는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심 씨가 항소심에서 ‘집을 팔아서 피해자 유가족과 합의하겠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서도 “합의 진행 중이라곤 하지만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고, 피해자 유족에겐 사과도 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1년 후에도 여전히 유가족은 심 씨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며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심 씨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최 씨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혐의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졌다. 심 씨는 삼중 주차해놓은 자신의 차를 최 씨가 손으로 밀었다는 이유로 최 씨를 폭행했고, 최 씨가 경찰에 신고하자 최 씨를 화장실에 가두고 감금·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최씨 때문에 모욕감을 느꼈다’며 최씨를 고소하고, 최씨와 관계없는 교통사고 진료비를 최씨에게 청구하는 등의 ‘갑질’을 행사한 사실도 있었다. 심 씨의 폭언과 폭행, 괴롭힘을 참다못한 최 씨는 지난해 5월 숨진 채 발견됐다.

● 아파트 경비원은 64세 고졸 남성
한편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최 씨와 같은 아파트 경비원은 26만여 명에 달하며, 대부분 60대 고졸 이하 학력의 남성으로 나타났다. 이런 내용은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연구보고서 ‘공동주택 경비근로자 업무범위 명확화의 고용영향분석’에 담겨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경비원은 26만9000명이며 98%(26만4000명)가 남성으로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60~69세가 절반에 해당하는 13만6000명(50.5%)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70세 이상이 7만8000명으로 29.1%를 차지했고, 50~59세(3만2000명·11.8%) 40~49세(1만4000명·5.1%) 30~39세(5000명·2.0%) 29세 이하(4000명·1.5%)의 순으로 뒤를 이었다. 전체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63.9세였다.

학력별로는 고졸 이하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2만1000명(45%)이었고, 초대졸 이상도 6만1000명(22.6%)이나 됐다. 평균 임금(월급)은 192만1000원이었고, 월 평균 근로시간은 207시간이었다. 아파트 경비원의 주된 근무형태가 24시간 맞교대제임을 고려할 때 근로일의 근로시간은 14~15시간, 휴게시간은 9~10시간이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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