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서 강경보수 라이시 당선… 힘 잃은 온건세력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입력 2021-06-20 06:57수정 2021-06-2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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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보수 성향 성직자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61)가 대선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제13대 이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극우 성향에 이란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신임 총리(49)와 강대강 대치를 벌이며, 중동서 양측 연합 대립이 보다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란 핵합의 복원(JCPOA) 과정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이란 내무부는 19일 이란 대선에서 라이시 후보가 1792만6345표를 얻어 61.9% 지지율로 당선됐다고 밝혔다. 이란 대선은 이슬람 시아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하고 서방권과 협상에 미온적인 보수파와 서방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개혁온건파 간의 대결 구도로 치러지는데, 이번 대선에서 개혁파를 대표해 출마한 압돌나세르 헴마티 전 이란중앙은행장(64)은 약 8.4%(242만7201표)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범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모센 레자에이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67) 지지율 11.8%(341만2712표)에도 못 미쳤다.

18일 치러진 이란 대선은 전체 유권자 5931만307명 중 2893만30004명이 참여해 최종 투표율은 48.8%로 집계됐다. 이란 대통령 선거는 팔레비 왕정이 무너진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듬해부터 시작돼 이번까지 총 13차례 치러졌는데, 투표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투표용지 중 약 400만 표는 무효표로 집계됐다. 이란산 원유 수출 금지를 골자로 한 미국발 대이란 금융제재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보수와 개혁 세력 모두 경제난을 풀 능력이 없다는 냉소주의가 이란 국민들 사이에 퍼졌다는 분석이 많다.

이란서 정치 무관심이 커지는 와중에 사회 전반적으론 보수 성향 비중이 더 높아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대한 금융제재 해제 약속을 뒤집고 2018년 이란 핵합의를 일방 파기한 뒤 지난해엔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 쿠드스군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까지 암살하자 이란 내부서 반서방 여론이 커졌다. 2013, 2017년 이란 대선서 서방과 협상을 주장한 로하니 대통령 당선 및 재선으로 힘이 실렸던 개혁파 입지도 급격히 위축됐다. 지난해 이란 총선선 전체 290석 중 강경파가 221석을 차지하면서 보수강경 여론이 주류를 차지했다. 최근 이란 의회는 기존 핵합의서 규정한 우라늄 농축 상한(3.67%)를 훌쩍 넘는 60%까지 농축 상한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승인하는 등 핵합의 파기를 염두에 둔 듯한 강경 조치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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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에 당선된 라이시는 대미 강경 여론을 주도해온 성직자로 30년간 법조계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검사와 대법관을 거쳤다. 1988년 1000여 명에 이르는 정치사범 집단 사형 선고시 이를 승인한 사망위원회 4인 중 1명으로, 이로 인해 미국 등 서방권 제재를 받고 있다. 당시 반체제 인사 숙청은 이란 최고지도자이자 국부로 일컬어지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2~1989) 의중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시는 2017년 보수강경파를 대표해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로하니 대통령에게 패배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나, 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2) 지지를 받아 2019년엔 사법부 수장을 맡았고 이후 줄곧 유력 보수 대권 주자로 거론됐다. 현재 하메네이 사망 또는 유고시 후임을 결정하는 권한이 있는 국가지도자운영회의 부의장으로, 고령인 하메네이의 유력 후계자로도 꼽힌다. 이란은 중요 결정사항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은 ‘절대 권력자’인 최고 지도자에게 있으나 대통령이 외교 및 산업 정책에 대한 방향 설정에 나선다.

라이시는 대미 강경파로 취임 이후 미국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올해 초 미국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뒤 트럼프 전 행정부서 파기한 이란 핵합의를 복원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중인 가운데, 라이시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관심사다. 라이시는 핵합의 복원 자체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권이 이란 핵합의 복원 과정에서 합의 이행 여부를 직접 검증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라이시 측은 “핵합의를 파기한 것은 미국이며 합의 이행 여부를 증명해야하는 것은 미국 쪽”이라며 맞서왔다.

서방과 협상이 지지부진해질수록 라이시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에 더 밀착하거나, 우라늄 농축 상한 비율을 올리는 등 강경 카드를 꺼낼 수 있어 미국으로서도 고민이 깊어졌다. 현재 이란은 우라늄 농축 비율 상한을 60%로 올렸는데 이를 90%까지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90% 비율까지 농축한 우라늄은 핵 무기 개발에 쓰일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은 이란 핵합의 복원을 위해선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재임중인 8월 안에 합의 복원 성과를 만들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무기 개발을 최대 안보 위기로 여기는 이스라엘은 강경 보수 이란 대통령 등장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19일 트위터를 통해 라이시를 ‘테헤란의 도살자’로 알려진 인물“이라고 지칭하며 ”이란 정권의 핵 개발 야욕을 이어가고 글로벌 테러 행위가 계속할 것이다“라고 날을 세웠다. 앞서 13일 신임 총리직에 오른 나프탈리 베네트가 총리 첫 의회 연설에서 ”이란 핵 프로그램이 중요 시점에 도달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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