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 이야기’서 영감…음유시인 아나이스 미첼이 연출한 이 뮤지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4일 15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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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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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는 최고의 음악가이자 이야기꾼이다. 아폴론 신으로부터 선물 받은 리라를 그가 연주하고 노래하면 초목과 짐승들도 감동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최고의 사랑꾼이기도 하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저승에 제 발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마저 음악으로 감동시킨 그는 아내를 데려오는데 성공하지만, 지상 문턱 바로 앞에서 아내를 보고픈 맘을 참지 못한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깬 그는 결국 홀로 돌아와야 했다.

이 매력적인 서사로 만든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극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 아나이스 미첼(40·미국)도 오르페우스를 닮았다. 흥이 넘치는 독특한 음색으로 읊조리듯 노래하는 그는 2010년 내놓은 동명의 포크송 앨범 ‘하데스타운’으로 먼저 대성공을 거뒀다. 평론가들은 새롭게 떠오른 이 음유시인에 환호하며 밥 딜런, 레너드 코헨과 견주었다.

앨범이 담은 이야기와 음악은 뮤지컬로 각색하기에도 제격이었다. 미첼은 직접 대본을 썼고 뮤지컬에 맞게 편곡한 그의 앨범 속 트랙은 무대서 되살아났다. 주인공 오르페우스는 클럽에서 일하는 가난한 웨이터로 현대적으로 각색됐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2019년 브로드웨이서 정식 개막한지 3개월 만에 토니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연출상, 음악상 등 총 8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 대작이 올해 8월 한국에 찾아온다. 세계 최초 라이센스 공연이다. 공연을 앞두고 ‘인간계 오르페우스’인 아나이스 미첼을 서면을 통해 만났다. 그는 “하데스타운은 먼 옛날 신화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이야기한다”며 “팬데믹으로 힘든 시기를 겪는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돌아보고, 작품을 통해 사랑과 연대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처음 신화 속 이야기에 맞는 음악을 떠올린 건 우연한 계기였다. 어린 시절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좋아했던 그는 대표곡 ‘Wait for Me’의 멜로디와 가사가 운전 중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랐다. “‘정해진 규칙은 바꿀 수 없다’며 지하 세계 규칙에 맞서는 오르페우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는 그는 “같은 음악가로서 아름다운 곡으로 돌처럼 딱딱한 심장마저 감동시키는 오르페우스가 매력적이다. 아마 모든 예술가들은 이 감성에 공감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 작업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리고 2010년 명반 ‘하데스타운’이 탄생했다.

본격적으로 무대화를 추진한 건 스타 연출가 레이첼 차브킨과 만나고 나서부터다. 차브킨은 최근 한국서 호평 받은 ‘그레이트 코맷’의 연출가이기도 하다. 브로드웨이에서 흔치 않은 여성 연출가와 여성 극작·작곡가의 만남은 그야말로 합이 좋았다. 그는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차브킨 덕분에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다른 브로드웨이 작품과 달리 제작진에는 프로듀서를 비롯해 여성이 많은 편다. 미첼은 이에 대해서도 “여성으로만 팀을 꾸리려고 했던 건 아니다. 제작진을 꾸릴 때 각자 역할에 맞는 최고의 사람을 찾았는데 대부분 여성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는 극의 내용에도 반영됐다. 페르세포네, 에우리디케 같은 여성 캐릭터가 주체성을 갖는다. 미첼은 “신화 속 많은 여성들은 주체성이 없이 기본적으로 피해자로 그려진다”며 “페르세포네는 단점이 있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여왕으로, 에우리디케는 강한 생존자로 표현했다. 신화 속 인물을 다른 색으로 표현하는 재미가 었었다”고 했다. 이어 “저와 레이첼이 브로드웨이서 활약하는 상징적 여성상이 됐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포크와 재즈 선율로 빚은 그리스 신화’다.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로 ‘레미제라블’을 꼽은 그는 “뮤지컬은 결국 음악으로 각색된 이야기다. 하데스타운에서도 음악의 마법이 깨지지 않는 마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국 무대서 이 마법을 부릴 배우들은 ‘역대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르페우스 역은 조형균 박강현 시우민이 맡으며,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엔 김환희 김수하가 낙점됐다. 하데스는 지현준 양준모 김우형이,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김선영 박혜나가 맡는다. 최재림 강홍석은 헤르메스를 연기한다.

8월 24일부터 내년 2월 27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7만~15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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