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목소리’ 내며 정치적 중립 시험대 오른 김오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9일 11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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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수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예방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21.6.9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김오수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예방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21.6.9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친정부 성향으로 알려진 김오수 검찰총장이 검찰 조직개편안에 공식 반대하면서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법무부 차관 재직 시절 ‘조국 사태’ 등 주요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맞춘 경력으로 인해 총장 취임 후에도 정권과 각을 세우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형사부의 6대 범죄 직접 수사를 제한하는 검찰 조직개편안을 놓고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연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초 김 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6대 범죄’ 직접 수사 절제를 강조함으로써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추진하는 검찰 조직개편안에 공감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1일 취임사에서 김 총장은 “국민이 반부패 대응역량 유지를 위해 검찰에 남긴 6대 중요범죄 등에 대한 직접수사는 필요 최소한으로 절제돼야 한다”며 “강제수사는 최소화하고 임의수사 위주의 절제된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친정부 성향의 총장답게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김 총장이 7일 대검 부장회의를 소집해 검찰 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정하고 이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상황이 크게 변하고 있다. 대검의 반대 입장 공식화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지난달 31일 조남관 총장 대행 체제에서 전달된 반대 의견과 비교해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임기 2년을 시작하는 신임 총장이 대검 참모회의라는 공식 창구를 통해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총장 개인이 아닌 검찰 수뇌부의 집단적 의사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검찰 수뇌부에서 예상치 못한 조직적 반발이 나오자 법무부와 청와대도 불의의 일격을 당한 듯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일부 감지된다. 8일 박 장관의 제안으로 김 총장과의 심야 회동을 한 것도 검찰 조직개편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김 총장을 달래려는 시도로 분석되고 있다. 검찰 개혁의 마무리 투수를 자임하고 있는 박 장관으로선 어떻게든 김 총장을 다독여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획기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조직개편안을 이번 기회에 시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조직의 수장으로서 검찰 수사권을 지켜야 하는 김 총장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검찰 조직개편안은 겉보기에는 검찰의 내부 업무분장을 조정하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치지만 본질은 형사부의 6대 범죄 직접 수사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것이어서 검찰조직과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가 시행될 경우 검찰조직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형사부 검사들은 수사 과정에서 부패범죄 등 6대 범죄와 관련된 혐의를 추가로 발견해도 수사를 할 수가 없다.

6대 범죄 수사를 할 수 있는 인지부서도 반부패수사부와 강력부를 통폐합함으로서 권력형 비리 수사와 조직폭력배 및 마약 수사 역량이 크게 후퇴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권력형 비리든 민생 범죄든 범죄자를 찾아내고 처벌하는 검찰의 수사 역량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검사들의 손발을 꽁꽁 묶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가 공권력 행사를 통해 범죄로부터 국민과 사회를 보호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검찰총장으로서도 검찰 수사권이 크게 제약되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간 김 총장은 문재인 정부에 비교적 코드를 잘 맞추면서 총장직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검찰의 무장해제를 압박하는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전임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목표로 한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에 반대하며 3월 4일 직을 던졌다. 검찰이 직접 수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만드는 것을 ‘검찰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여권에 맞서 김 총장이 어떤 리더십으로 이번 국면을 돌파할지 검찰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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