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은 기본” vs “소문만 무성”… 백신휴가 ‘극과극’

  • 뉴스1
  • 입력 2021년 6월 3일 12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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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양천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백신 접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뉴스1 © News1
서울시 양천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백신 접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뉴스1 © News1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백신 대량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백신 휴가를 도입하는 대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특수고용직 근로자 등에게 백신 휴가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방역당국은 백신 접종 이후 이상증세가 나타나면 유급휴가를 쓰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다 보니 직업에 따라 백신휴가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

3일 정부 지침 등에 따르면 백신 휴가는 기존의 연차 휴가가 아닌 유급 휴가 혹은 병가가 원칙이다. 접종자의 절대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서 별도의 의사 소견서나 증빙자료도 필요 없다.

권장되는 기간 역시 최대 이틀이다. 접종 이후 10시간 안팎이 지난 후부터 이상 반응이 발현된다는 점을 감안됐다. 통상적으로 접종 다음 날 하루와 이후에도 이상 반응이 계속될 점을 고려, 하루를 더 휴가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이같은 지침을 민간 부문에 적극 권고하고 있다.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려 집단 면역을 형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파도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현상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문제는 이같은 권고와 달리 모든 접종 대상자들이 백신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없다는데 있다. 말 그대로 권고 사항이고 이를 위반한다고 적극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장이 영세한 중소기업에서 백신을 맞고 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근무 환경상 현실적으로 휴가 사용이 쉽지 않다는 점이 핵심이다.

충북 지역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씨(36)는 “회사가 백신 휴가를 적극 권장해야 접종을 해볼 생각이라도 할 텐데 아직 휴가 기준도 보지 못했다”며 “회사에서 하루 정도는 휴가를 준다는 소문도 있지만 현실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한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김모씨(33)는 “사측에서 백신을 맞으면 하루 휴가를 준다는 공지가 왔지만 실제로 쉰 직원은 보지 못했다”며 “업무 특성상 내가 쉬면 누군가 일이 많아져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사실상 쉬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대리기사, 배달기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백신 휴가를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남 지역에서 택배 기사로 일하는 이모씨(47)는 “회사로부터 백신 휴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업무 시간에 쓰는 개인 자동차 수리비 등 들어갈 돈이 많아 생계를 위해 아파도 일해야 하는 처지”이라고 말했다.

이상국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본부장은 “백신 휴가는 사실 저희와 완전 동떨어진 수준의 얘기”라며 “코로나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자격 증빙조차도 회사에서는 비협조적인데 백신 휴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백신 휴가를 부여받지 못한 이들과 달리 대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는 백신휴가를 제도화하고 있어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직원들에게 접종 당일 하루와 이상 반응이 있을 경우 추가 이틀을 유급휴가로 사용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LG그룹 역시 임직원들에게 접종 당일과 다음날까지 이틀간 유급 휴가를 부여하며 SK하이닉스 역시 접종 당일을 포함해 최대 3일까지 유급휴가를 제공한다. 이 밖에도 현대자동차, 유한킴벌리, 카카오게임즈 등이 백신 유급 휴가를 시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도 백신 휴가가 도입됐다. 대구시는 지난 4월 전국 광역시·도 단위 지자체 중 처음으로 백신 특별휴가제를 도입했다. 대구시 공무원과 공무직 근로자들은 공가를 사용해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고 접종 다음날에는 방역 유공에 따른 특별휴가를 하루 더 제공받는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백신 접종 당일에는 접종이 필요한 시간만큼 공가를 부여하고 접종 다음날은 이상반응 발생자에 한해서 하루 병가를 제공하고 있다.

◇휴가비 지원 개정안 발의됐으나 재정부담으로 통과 미지수

국회에서는 현재 규모가 큰 기업이나 지자체에서만 추진되는 백신 휴가를 중소기업 등에도 확산하기 위해 유급 휴가 및 휴가비 지원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서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휴가비 지원으로 인한 재정부담이 만만치 않아 기획재정부에서는 해당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고 알려진데다 정치권에서도 이견이 이어지면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정부가 사업자 등이 근로자들에게 백신휴가를 주도록 의무화하는 게 형평성 측면에서 좋을 것 같다”며 “일을 비우기 어려운 사람들의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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