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쓰는 ‘사진 보정 앱’ 당신이 병든다

  • 신동아
  • 입력 2021년 6월 3일 10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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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사진 보정이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GettyImage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사진 보정이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GettyImage
“찰칵.”

스마트폰 셀프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지모(23) 씨는 곧바로 보정 애플리케이션(앱)을 켰다. 지씨는 스노우, 싸이메라, 유라이크, 소다 네 개 앱을 이용해 사진을 수정한다. 지씨는 “이 정도는 기본”이라며 “보정 앱을 6,7개씩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씨는 보정 앱을 이용해 피부 톤을 하얗게 만들고 눈을 키웠다. 콤플렉스인 볼살을 집어넣어 얼굴 라인을 좀 더 갸름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진을 들고 직접 성형외과를 찾아가 본 적은 없지만 사진 속 모습이 되고싶은 생각은 해봤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대형 성형외과 기획실장 유모 씨는 “3~4년 전부터 보정된 사진을 들고 ‘이렇게 수술해 달라’고 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과거에는 연예인 사진을 지참하고 똑같이 해달라는 고객이 대세였다. 최근에는 보정 앱으로 수정한 자신의 셀프카메라 사진을 갖고 병원을 찾는 고객이 늘었다고 한다. 그는 “대체로 여성 고객이 많고, 연령은 1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하다”면서 “인스타그램이 대세로 자리 잡은 시점부터 이와 같은 고객이 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상우 DA성형외과 원장도 “예전에는 연예인 사진을 갖고 와서 코는 000처럼 해주시고 눈은 000처럼 해달라는 고객이 많았다. 요즘은 보정된 사진을 들고 오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 원장은 “의사 소견으로는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고객도 있어 이런 분들에게는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정된 모습의 ‘나’와 마주하다
영국 성형외과 의사 티지언 이쇼는 “스냅챗 이형증은 단순한 뷰티 트렌드가 아닌 사회적으로 예의 주시해야 할 현상”이라고 말했다. 티지언 이쇼 제공
영국 성형외과 의사 티지언 이쇼는 “스냅챗 이형증은 단순한 뷰티 트렌드가 아닌 사회적으로 예의 주시해야 할 현상”이라고 말했다. 티지언 이쇼 제공


스노우(snow)와 소다(SODA) 등 보정 앱이 인기다. 사진 기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인스타그램에도 보정 필터 기능이 있다. 이에 따라 보정으로 다듬어진 외모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덩달아 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정한 모습을 자신의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은 해외에서 이미 사회문제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지난 2018년 영국의 성형외과 의사 티지언 이쇼는 ‘스냅챗 이형증(Snapchat Dysmorphia)’이란 말을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쇼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병원에 앱으로 보정한 사진을 들고 방문하는 환자가 늘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해 주변을 살펴보니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스냅챗은 사진 기반 소통 SNS다. 이용자들은 주로 얼굴 인식을 통한 필터를 통해 대화를 나눈다. 사진을 고른 뒤 가벼운 조작으로 피부 톤을 바꾸고 신체 부위의 크기를 조정할 수 있다. 또 주름도 없앨 수 있다.

스냅챗 이형증은 스냅챗과 신체이형증(BDD)이 합쳐져 만들어진 명칭이다. 우선 신체이형증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체이형증에 대해 “자신의 신체에 이상이 있다고 느끼는 심리장애”라고 정의했다. 곽 교수는 “신체이형증은 청소년기에 주로 발현돼 성인까지 이어지며, 심한 경우 거식증과 같은 섭식장애나 성형중독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쇼는 스냅챗 이형증이 생겨난 원인으로 SNS의 활성화를 꼽았다. 그는 “사람들은 이제 SNS에서 매일 보정된 모습의 ‘나’와 마주한다”며 “‘좋아요’와 조회수로 계속해서 외모를 평가받기에 보정된 자아상(self-image)이 점점 강화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상과 현실을 혼동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부연했다.

이쇼는 “스냅챗 이형증은 단순한 뷰티 트렌드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고 특히나 SNS를 자주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취약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예의 주시해야 할 현상”이라고 경고했다.

보정 앱 사용하면 자존감 하락


해외에서는 SNS 보정 필터와 자존감의 연관성에 대해 이미 여러 건의 연구가 이뤄졌다. 2019년 미국안면성형재건학회(AAFPRS)가 성형외과 의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6년 보정한 사진을 들고 성형외과를 내원한 환자의 비율이 42%였는데 2017년에는 55%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보스턴대학교 피부과 교수들은 보고서에 “화면 속 보정된 외모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보정이 가능한 SNS들이 이용자들 현실과 가상세계 구분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청소년과 신체이형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주의가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2018년 존스홉킨스 약대에서는 SNS 사용과 자존감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연구를 진행했다. 응답자 25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진 보정이 가능한 SNS를 자주 사용하는 응답자일수록 성형수술을 고려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정이 가능한 SNS를 사용하는 응답자가 사용하지 않는 응답자들에 비해 자존감이 월등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연구는 미국의사협회 안면성형외과학회지(JAMA Facial Plastic Surgery)에 게재됐다.

2015년 호주 라트로브대학은 보정 필터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진이 101명의 12~14세 여학생 10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보정을 하는 학생들이 마른 몸매를 더 이상적으로 생각했으며 식이장애를 겪는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논문은 국제식이장애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Eating Disorders)에 실렸다.

이러한 지적이 잇따르자 기업들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글은 2020년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자체 조사를 벌인 뒤 개선책을 내놨다. 구글이 2020년 10월 1일 발표한 ‘디지털 웰빙’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은 안드로이드 사용자가 카메라를 켤 때 보정 필터가 꺼진 상태로 작동하도록 했다. 또 보정을 가리키는 단어를 ‘개선(enhancement)’이나 ‘미화(beautification)’에서 ‘얼굴 보정(face retouch)’이라는 중립적인 단어로 바꿨다. 보정 앱으로 사진을 수정할 때에는 꼭 전과 후가 비교 가능하도록 했다.

청소년이 특히 취약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섭식장애를 주로 연구하는 김율리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는 “이상적인 가상현실을 지나치게 내면화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강박이 심해지면 신체이형증 같은 망상장애나 섭식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아직 가치관이 자리 잡기 이전인 청소년들이 특히 더 취약하다. 신체의 단점은 받아들이고 장점을 드러내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주미 소울뷰티디자인 대표는 외모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자존감 회복을 돕는 상담사다. 김 대표는 자존감 하락을 겪는 여성들에게 “획일화된 미적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나만의 차별화된 개성과 장점을 찾아가라”고 조언했다. 이어 “사람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몸동작이나 개인의 분위기에서도 호감을 많이 느낀다. 인형 같은 외모가 꼭 정답이 아닌 것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사진보정#자존감#이형증#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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