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부터 커뮤니티까지··· 일상으로 파고든 '중범죄 알선'

  • 동아닷컴
  • 입력 2021년 5월 18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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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아닙니다 불법입니다. 위험한 일이지만 그누군가는 하고 있는 일입니다’

지난 5월 17일 오전 10시 13분, 한 구직 카페에 올라와 있는 ‘대면 수금 직원’ 구인 글에 쓰여 있는 문구다. 해당 글에는 ‘자사 메뉴얼대로 진행하면 아무 문제 없이 깔끔하게 처리되며, 직접 자금운송을 하셔야하기 때문에 인증 및 심사가 까다롭다’고 안내돼있고, ‘돈 벌고 싶은 의지만 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면서 전화번호와 카카오톡, 텔레그램 번호를 써놨다. 목적부터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수금 역할을 맡을 범죄자를 모집하기 위한 게시글이다.

보이스피싱 수금책을 찾는 게시물. 현재는 요청에 의해 삭제되었으나, 직전까지도 다음 포털에서 그대로 검색할 수 있었다. 출처=다음
보이스피싱 수금책을 찾는 게시물. 현재는 요청에 의해 삭제되었으나, 직전까지도 다음 포털에서 그대로 검색할 수 있었다. 출처=다음

문제는 해당 게시물이 다크웹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포털 사이트 검색으로 누구나 진입할 수 있는 다음 카페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불법적인 내용을 암시하는 은어나 문구를 입력하고, 관련된 카페를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범죄에 가담할 수 있다. 현재 다음 카페에는 이런 불법 구인구직 카페가 여러 개 존재하며, 위챗이나 텔레그램으로 소통해 수사망을 피하고 있다.

해당 카페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범죄 모의는 보이스피싱 및 스미싱, 대포폰 개통 및 판매, 불법 개인·법인 대출, 유흥 업소 종사자 모집 및 사업장 판매, 추심 및 수금, 차량 보험사기단 모집 등이었으며, 특히 징역과 도박을 뜻하는 베팅을 합성한 징벳이라는 은어를 사용해가며, 징역에 갈 각오 하고 돈이 되는 범죄에 가담할 사람들을 구하는 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중범죄를 알선하는 카페가 공개 형태로, 7년이란 시간 동안 운영될 수 있었을까?

주요 카페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범죄 알선이 이뤄지고 있다. 출처=다음
주요 카페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범죄 알선이 이뤄지고 있다. 출처=다음

다음 카페는 운영자가 카페 폐쇄를 신청한 다음, 15일간 폐쇄 안내 공지를 한 이후 삭제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카페는 지난 2015년 4월 폐쇄 공지를 업로드한 이후 폐쇄하지 않았고, 운영자도 2015년 6월 이후 방문한 기록이 없다. 보통 주인과 활동 기록이 없어진 카페는 일정 기간 이후 자동 폐쇄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불법 구인글이 활동 기록으로 잡히면서 7년이 지나서도 유지돼 왔다. 운영 및 관리를 맡은 카카오는 취재가 시작되자 곧바로 해당 카페를 폐쇄하고 상황 파악에 나섰다.

카카오 담당자는 “다음 카페는 커뮤니티 특성상 운영자가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운영되며, 365일 24시간 운영 중인 유해정보신고센터를 통해 신고 등이 확인된 경우, 불법적이거나 운영정책에 위배되는 게시글, 카페를 규제하고 있다”라며, "해당 카페는 운영자가 부재중인 상황이나, 카페 개설 목적 자체가 불건전 카페에 해당하여 블라인드 처리를 조치했다”고 밝혔다.

불법 구인, 대형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서도 기승

하루 약 1억 2천 회 조회 수가 발생하는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도 불법 구인 행위가 끊이질 않는다. 디시인사이드는 이용자의 주된 관심사를 토대로 ‘갤러리’라는 페이지를 개설하며, 현재 약 3천여 개의 갤러리가 생성돼있다. 불법 구인책들은 이용자들이 혹할만한 갤러리에 침투해 공모자를 모집한다. 디시인사이드의 주 사용자가 젊은 층인 데다가, 익명 이용자가 많아 불법 구인 행위가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당 갤러리는 상주 인원이 적은 게시판이지만, 문제될만한 내용들이 계속 오르내리고 있다. 출처=디시인사이드
해당 갤러리는 상주 인원이 적은 게시판이지만, 문제될만한 내용들이 계속 오르내리고 있다. 출처=디시인사이드

이용자가 많은 갤러리라면 거의 다 불법 구인 게시물이 심심치 않게 업로드되지만, 그중에서도 ‘구인구직 갤러리’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원래 구인구직 갤러리는 하루 10개 내외의 게시글이 올라오는 갤러리며 활동 인원도 거의 없다. 하지만 다른 게시판과 다르게 구인구직 갤러리는 이용자가 직접 ‘징벳만 빼고 시켜만 주시면 다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일 주시면 바로 착수한다’, ‘자차 있습니다. 안전하고 확실한 것만 합니다’의 게시글을 올려 불법 행위에 가담할 의사를 밝히고, 구인 측에서 텔레그램 아이디를 전달해 1:1 대화로 넘어간다. 또한, 하루에도 십수개씩 불법 구인 게시물이 업로드되고, 관리 주체가 실시간으로 삭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디시인사이드 관계자는 “디시인사이드는 불법적 게시물을 신고를 통해 삭제하고 있지만, 갤러리를 폐쇄하더라도 의도적으로 불법 쓰는 사람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을 밝혔다. 실제로 디시인사이드는 각 갤러리마다 관리자를 두고 불법적인 내용들을 실시간으로 삭제하고 있지만, 워낙 유입이 많아 모두 다 걸러내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이용자가 올린 게시글을 심증만으로 지울 명분 역시 없다. 이는 디시인사이드만의 문제가 아닌, 인터넷 공간 전체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불법 구인구직은 ‘깨진 유리창’, 방치하면 더 커질 것

블라인드(이용 중단) 처리 된 카페 모습. 출처=다음
블라인드(이용 중단) 처리 된 카페 모습. 출처=다음

불법을 행할 목적으로 구인구직하는 행위는 형법상 범죄를 실현할 목적으로 행하나 착수에 이르지 못한 상태인 ‘예비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예비죄는 기본 범죄로 나아가는 한 과정일 뿐 독립된 범죄 유형이 아니다. 따라서 불법으로 구인 구직하는 행위 자체를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지금도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불법 관련 내용을 초성으로 입력하면 곧바로 범죄에 가담할 수 있는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SNS나 검색 엔진과 다르게, 국내법이 통용되는 주요 포털사이트나 커뮤니티만큼은 충분히 관리 감독이 가능하다. 주요 인터넷 사업자의 발 빠른 대처가 선의의 피해자를 줄이는 만큼, 적극적인 관리가 시급해보인다.

동아닷컴 IT전문 남시현 기자 (shn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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