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회장 “유명 대학들 단과대라도 지방 옮겨야 부동산 잡는다”[최영해의 폴리코노미]

최영해 기자 입력 2021-05-02 08:09수정 2021-05-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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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보는 강남 부동산 해법
외국인학교 동해안 남해안에 설립 유도하고
서울 수준 종합병원 서비스 지방에서 받을 수 있어야
용산 공원엔 20평 아파트 지어 청년에 분양 필요
2016년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신동아와 인터뷰하는 모습. 박해윤 신동아 기자
“혁신이란 옛 생각에 젓가락 하나 더 올리는 게 아닙니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혁신이 이뤄집니다. 강남 집값 문제도 세금으로만 해결하는 것은 단견(短見)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교육과 의료를 혁신적으로 지방으로 분산하는 정책을 펴야 할 것입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3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문제, 특히 서울 아파트 값을 잡기 위해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한국에서 수도 서울은 어디 내놔도 부럽지 않는 국제적인 도시가 됐다. 외국인들이 살기에 편한 도시로도 손에 꼽힌다. 박 회장은 강남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도 주변의 좋은 환경 영향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강남은 서울의 맨해튼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정부가 나서 집값을 잡으려 할 게 아니라 ‘그들만의 도시’로 내버려둬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외국인 학교를 동해안 남해안에 배치
작고한 박 회장의 모친은 어린 시절의 박현주에게 “너는 꼭 서울에 가서 살아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라며 옛날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박 회장 모친도 지방에 살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모양이다. 박 회장의 고향은 뒷산이 있고, 집 앞엔 조그만 내가 흐르는 시골이었다. 박 회장은 “지방에 있으면 왠지 인생이 뒤떨어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이런 묘한 기분은 냉정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서울 사람 눈에는 한국의 제2 도시인 부산도, 대구도, 그리고 광주나 대전도 시골로 비쳐진 게 오래 됐다.

박 회장은 “서울 강남 중심으로 이뤄지는 교육 문제를 풀지 않고는 아파트 값을 해결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론 “서울이 아닌 동해안이나 남해안에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근교에 국제학교를 설립하면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하므로 이런 교육 인프라를 지방으로 널리 분산하자는 것이다. 제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국제학교를 모델로 꼽았다. 박 회장은 “국제학교를 서울이나 수도권 주변이 아니라 동해안의 강릉이나 속초, 남해안의 거제나 여수 같은 곳에 만들면 지방도 자연스레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치면 학비가 비싼 사립 보딩 스쿨(기숙학교) 같은 것을 한적한 코네티컷 주에 두듯이 서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동해안이나 남해안에 설립을 허가하면 자연스레 지방과의 균형 발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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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학교가 지방으로 가면 자연스레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서부에 스탠퍼드대를 만든 뒤 대학을 중심으로 첨단 산업 클러스터인 실리콘밸리가 산업의 생태계로 자연스레 형성됐듯이 도시의 발전에 교육 인프라는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박 회장은 서울에 몰려 있는 대학을 지방으로 과감하게 분산하는 정책을 펼 것을 주문했다. 입시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서(서울대)-연(연세대)-고(고려대)-서(서강대)-성(성균관대)-한(한양대)-중(중앙대)-경(경희대)-외(한국외국어대)-시(서울시립대)’ 순으로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다. ‘지잡대’ 처럼 지방을 하대하는 조어(造語)가 서슴없이 입에 오르내린다. 서울 중심의 중고교 및 대학 교육 정책으로는 서울 아파트 값을 잡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박 회장은 강조했다.

●SKY 대학 지방으로 옮기지 못할 이유 있나
박 회장은 구체적으로 “소위 SKY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는 한국의 학맥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며 “유명 대학이 서울에 몰려 있어선 수도권 집중화를 막기 어렵고, 더불어 지방의 발전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서울에 몰린 대학 교육의 거점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정책을 장기적으로 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그러기 위해선 찔끔찔끔 할 게 아니라 과감하게 정책적 결단을 내리고, 사회에서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예컨대 SKY 대학의 경우도 거점 캠퍼스는 서울에 두더라도 전공별로 단과 대학을 지방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인천 송도에 바이오 학과를 집중시키고, 경북 구미엔 전자 관련 학과를, 전남 광주엔 문화콘텐츠 학과를 배치하는 식으로 전공별로 지방의 교육 클러스터를 자연스레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SKY 뿐 아니라 ‘인 서울’ 대학들이 지방으로 특성화된 학과를 재배치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대학이 굳이 지금처럼 서울에 몰려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교육당국이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며 “강제로 대학 캠퍼스를 이전할 수는 없겠지만 지방 거점별로 특성화된 학과를 분산 배치하면 정부에서 과감하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대학 캠퍼스의 지방 분산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서울대도 굳이 서울에만 모든 학과가 있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교육이 지방으로 분산해 소비와 문화도 자연스레 지방으로 이동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에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한국의 경우 과거 지역의 우수 인재들이 진학했던 경북대 부산대 충남대 전남대 강원대 등 지방 국립대학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서울 유명 대학의 단과대학들이 지방으로 옮기면 국립대와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교육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처럼 각 주에 미국 대학 랭킹 100위 안에 드는 대학들이 적어도 두어 개는 있어야 도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할 것이라는 지방 대학의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어떻게 교육정책을 펴는 것이 좋을지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고심해야 한다고 박 회장은 밝혔다. 그는 “서울에 좋은 것을 다 모아놓고 지방에 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지방을 서울처럼 만들 수는 없겠지만 교육만큼은 인프라와 소프트웨어까지 지방으로 분산해 균형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주요 도시에 좋은 대학이 있는 미국의 사례
2000년대 초반 하버드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하면서 보스턴의 교육과 도시 문화를 경험한 박 회장은 “하버드대 기숙사라고 해봐야 극히 소박했다”며 “하버드나 매사추세츠공대(MIT) 같은 좋은 대학을 갖고 있는 덕분에 보스턴이라는 도시가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엔 조지타운대와 조지워싱턴대, 아메리칸대가 있다. 나름 좋은 학교이지만 수도에 좋은 대학이 몰려 있는 구조는 아니다. 하버드대는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스탠퍼드대는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 예일대는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 프린스턴대는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 각각 위치해 있다. 주를 대표하는 명문 주립대는 아이비리그 못지않게 뛰어난 대학들도 적지 않다. 캘리포니아 주의 UC버클리대, 버지니아 주의 버지니아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노스캐롤라이나대, 텍사스 주의 텍사스오스틴대 등은 대표적인 유명 주립대로 꼽힌다.

미국의 우수한 고교생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인근 주립대를 선택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아이비리그의 입학률이 지원자의 5%에 불과한 좁은 문이기도 하지만 주립대는 해당 주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전체 학비의 절반도 안 되는 ‘인스테이트(in-state)’ 학비 혜택을 준다. 고등교육의 지역 쏠림 현상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경우 학부를 중시하지만 미국에선 석사나 박사 등 최종 학교를 평가하는 분위기도 한국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박 회장은 “좋은 대학이 지역의 거점 도시에도 있어야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면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서부 팔로알토에 위치한 스탠퍼드대 전경. 대학을 중심으로 첨단산업 기지인 실리콘밸리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사진 스탠퍼드대 홈페이지


● 수술하면 온 가족이 KTX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야
박 회장은 “중병이 걸려 환자가 서울에서 수술하면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오는 현실에서 서울 집값을 어떻게 잡겠느냐”고 꼬집었다. 은퇴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병원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종로, 분당, 보라매) 연세대 세브란스(신촌, 서울역, 강남) 서울삼성병원(강남, 강북) 고려대 병원(안암, 구로, 안산) 가톨릭대 성모병원(강남, 은평) 울산대 아산병원(서울, 울산, 강릉) 등이 대부분 서울 중심부에 병원을 갖고 있다. 교육 인프라 뿐 아니라 의료 인프라가 서울에 밀집해 있는 것이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 주에선 메이오병원 중심으로 타운이 형성돼 있다”고 했다. 오하이오 주의 케이스웨스턴리저브(CWR)대도 병원이 유명하고, 노스캐롤라이나 주 채플힐이라는 조그만 대학 도시는 UNC병원이 있어 타운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지방에서도 충분히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갖춰놔야 은퇴자들이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그만 병이라도 걸리면 무조건 서울로 이동하는 상황을 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에 교육과 의료 문화 시설이 집중된 것과 달리 미국은 중부의 척박한 시골을 빼면 어느 정도 표준화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돼있다. 공립학교 수준은 지역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표준화된 학교 운영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백화점 마트 도서관 YMCA 등 생활편의 시설이 어느 정도 평준화돼 있어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한국이 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할 발전 모델이라는 게 박 회장의 진단이다.

● 서울에 공원 많이 만들 필요 있나
박 회장은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이 지방에서도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걱정 없이 받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좋은 병원을 한 두 개 더 만드는 개념이 아니라 서울과 지방의 의료 서비스를 차이가 나지 않도록 정책을 설계하고 실제 환자와 가족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의료 인프라를 지방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5년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앞에서 “주식을 안 갖고 있어야 청렴한 사람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한국 주식의 저평가 현상을 부채질했다”며 한국 자본주의의 미성숙을 개탄했다. 16년 뒤 청년들이 주식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박 회장은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주식을 하지 않으면 노후에 가난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동아일보DB


수도권의 의료 시설이 지방으로 분산되면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지방에서도 받을 수 있게 된다. 가령 서울대병원이 암이나 희귀 질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데 주력하는 것처럼 서울에선 보다 전문적인 치료에 집중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서울아산병원은 강릉아산병원과 울산대병원에서도 같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환자들이 KTX를 타고 서울의 병원으로 몰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서울에 공원을 더 많이 만들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박 회장은 “용산 미군 기지를 모두 공원으로 하지 말고 일부 면적을 할애해 20평대 중소형 아파트를 지어 젊은 세대들에게 분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일에 서울 올림픽공원에 가보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며 “남산과 인왕산 북한산 등 서울 주변에 조금만 가면 자연 경관이 좋은 산들이 많은데 굳이 도심에 공원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미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렸다고 혁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박 회장. 한국 자본시장의 새 지평을 개척한 금융의 파이오니아로 평가받는 그에게 강남 집값 문제는 단편적으로 볼 수 없는 사안이었다. 세금 문제 못지않게 교육과 의료라는 사회적 인프라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는 그에게서 한국 사회를 보다 멀리 내다보려는 혜안이 엿보였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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