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환경 이야기]중고교생들이 앞장서 마을문제 해결하는 ‘리빙랩’을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도시 하천-미세먼지 관리 등 생활 속 다양한 사회 문제
시민들이 주도해 발굴-해결…기후위기 대응 모델로 주목

지난해 가을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변에 가을 꽃길이 조성된 모습. 내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생태민주주의다. 서대문구 제공
지난해 가을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변에 가을 꽃길이 조성된 모습. 내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생태민주주의다. 서대문구 제공
1996년 한 무리의 중고교생들이 홍제천 상류의 평창동에 모였습니다. 학생들은 하천에서 저서성 대형 무척추동물을 채집하고 있었죠. 저서성 무척추동물이란 생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중에서 생활하는 무척추동물을 말합니다. 흔히 수서곤충이라고도 하는 이들은 하천 수변부에 살며 하천의 수질을 방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서울YMCA에서 주최한 ‘도시하천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었습니다. 지도교사와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이 끝난 다음 해에도 하천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상류만 탐사한 것이 아니라 중류, 하류까지 탐사를 해나갔습니다.

하천의 수질은 생물학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이화학적인 방법으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들은 홍제천의 용존산소량을 전 구간에 걸쳐 측정했습니다. 홍제천 지도를 만든 뒤 측정한 시료를 바이엘병에 담아 측정 장소에 해당하는 병을 늘어놓았죠. 그랬더니 홍제천 전 구간의 용존산소량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용존산소량이 많을수록 병은 파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하천의 수질 현황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성과에 자축의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오염물질은 하류로 갈수록 많이 쌓입니다. 그렇다면 병의 색깔도 당연히 상류로 갈수록 파란색이 짙어지고 하류로 갈수록 옅어져야 했죠. 하지만 이들이 만든 지도를 보면 상류가 오히려 용존산소량이 적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결과였죠. 다시 한 번 조사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하천 상류인 평창동 인근에서 뭔가가 나오고 있었던 겁니다.

학생들은 상류에서 무엇인가 오염물질이 방류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다시 탐사를 했지만 주택가 이외에 별다른 오염원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오염물질은 주택가에서 방출되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탐사팀은 종로구청 담당과에 가서 해당 지역 하수관 지도를 복사해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중류에서 하류까지는 상하수도 분리하수관이 있지만 상류에는 없었습니다. 생활하수가 하천에 그대로 방류되고 있었던 거죠.

2년째 탐사를 하던 어느 날, 근처 주택 주인은 이들에게 와서 ‘왜 매년 여기를 찾아오냐’고 묻습니다. 이들은 “이곳에는 분리하수관이 설치돼 있지 않아 생활하수가 그대로 방류되고 있다”고 말하죠. 주인은 놀란 얼굴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탐사팀이 그 장소에 다시 방문했을 때 하천은 전년과 다르게 깨끗했습니다. 생활하수가 방류되던 곳이 사라진 것이죠. 종로구청에 전화 문의를 해보니 “민원이 들어와서 분리하수관을 설치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매년 이곳을 찾아온 자신들의 행동이 사회를 달라지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데 놀라고 또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생태계의 부양 능력을 고려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을 환경정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환경이란 단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둘러싼 자연을 지칭하는 단어란 점에서 환경정의조차 인간중심주의라는 한계가 지적됐습니다. 그 결과 등장한 게 생태정의란 개념입니다.

생태계가 살아야 그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도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개념이 생태민주주의입니다. 홍제천을 탐사한 아이들은 그 활동에서 무엇을 얻었을까요? 하천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통해 하천 생태계를 잘 알게 됐을 것이고, 하천이 오염되는 원인도 알게 됐을 것입니다. 그 원인은 인간의 잘못된 하천 관리에 있었죠. 그런 면에서 학생들의 탐사 활동은 자연과 인간의 소통 활동이었습니다. 자연을 이용하려면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죠.

아이들의 활동은 이른바 ‘리빙랩’이라고도 불립니다. 리빙랩은 생활실험실로 번역되기도 하죠.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사용자 중심으로 전문가, 이해당사자, 관계기관 담당자들과 협력해 답을 찾는 방식을 뜻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역량은 바로 이런 것이겠죠?

이수종 신연중 교사
#신문과 놀자!#환경 이야기#리빙랩#생태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