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K팝 위상…BTS·블핑, 인권·기후 문제 동참 이끈다

뉴시스 입력 2021-03-31 05:12수정 2021-03-31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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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증오와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건 저희가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시안으로서 저희의 정체성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K팝이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그간 암묵적으로 금기시돼온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최근 미국 등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아시아계 혐오에 반대한다는 뜻을 지난 30일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StopAsianHate’(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 ‘#StopAAPIHate’(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아시아인 차별에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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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은 “저희는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기억이 있다”면서 “길을 걷다 아무 이유 없이 욕을 듣고, 외모를 비하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시안이 왜 영어를 하느냐는 말도 들어봤다”고 털어놓았다.

밝은 에너지를 주무기로 삼은 K팝 아이돌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경험이나 생각을 공개적으로 공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그때 겪은 일들은 저희를 위축시켰고, 자존감을 앗아가기도 했다. 하물며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증오와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건 저희 가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최근 아시안 인종차별을 촉발시킨 미국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인 K팝 가수 에릭남, 힙합가수 박재범, 그룹 ‘2NE1’ 출신 씨엘, 힙합그룹 ‘에픽하이’ 타블로 등도 “아시안 차별을 멈춰달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에릭남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아시아인들은 ‘영원한 외국인’이자 ‘모범적 소수민족 신화’의 주인공으로 (미국 사회에) 초대받았지만 통합되지는 못했다”고 짚기도 했다.

아시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당당해지다
오랫동안 서구 문화에 비해 아시아의 문화는 평가절하됐다. 이로 인해 예전에 세계에 진출하는 K팝의 공식은 평면적이었다. 음악적 완성도보다, 귀여움이나 화려한 패션을 강조했다. 사회적 메시지는 자연스레 표백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문화의 위상은 눈부시게 달라졌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K팝이 월드 투어를 돌면서 수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다. 한국 영화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비롯 4관왕을 차지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도 아시안들의 자부심을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그간 방역·의료 강국으로 알려진 미국과 유럽사회가 제대로 대처를 못해 피해가 컸던 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비교적 대응을 잘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적·사회적 아시아와 서구사회 위상의 역전은 아시아인들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서양인들이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몰상식한 일들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아시아계 혐오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시안으로서 저희의 정체성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인권 관련 목소리를 낸 건 다양한 인종을 아루른다. 작년 미국 내 흑인 인권운동 ‘블랙 라이브스 매터’(BLM·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와 관련, BLM 측에 약 100만 달러(약 12억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다양해지는 아이돌 관심사…MZ세대 성향과 맞물려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K팝 아이돌이 음악 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다양하다. 최근에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환경문제도 그 중 하나다.

K팝 간판 걸그룹으로 떠오른 블랙핑크(BLACKPINK)‘는 지난달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 홍보대사에 위촉됐다.

블랙핑크 멤버들에게 세계인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여달라고 청한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여러분이 현시점에 이와 같이 중요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준 것은 매우 환영받을 일”이라고 말했다.

블랙핑크는 “기후변화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저희는 더 많이 배우고 싶으며, 팬 여러분들도 같이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청했다.

북미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K팝 걸그룹 ’이달의 소녀‘(LOONA) 멤버 츄는 ’지구를 지켜츄‘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 아픈 지구를 지키기 위한 친환경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다.

떠오르는 한류 그룹 ’몬스타엑스‘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말 비대면으로 개최한 ’제19차 국제반부패회의‘의 홍보대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면서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놓기까지, 또 저희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할지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놓은 것처럼 아직까지는 조심스럽다.

그런데 사회 문제에 침묵해야 한다는 K팝의 불문율을 깨는데 중심이 된 건 K팝 팬들이다. 특히 MZ세대가 중심이 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세대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그로 인해 공정함과 정치적 올바름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윗세대가 관행처럼 여기며 슬쩍 넘어가는 불합리함을 두고보지 않는다.

대형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갈수록 경쟁은 치열한데, 정작 젊은 세대에게 돌아갈 몫은 적어지면서 공평이라는 가치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요즘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보이는 특성”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은 이런 문제에 대해 MZ세대가 더 각성하게 만들었다. 인종·국경을 넘어 세계 MZ 세대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MZ세대가 K팝 팬덤의 중심이 되면서 K팝 아이돌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의 아이돌들 역시 MZ세대이이기도 하다. 이들이 교감을 하면서, 사회적·환경적 소신에 대한 발언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방탄소년단처럼 단순한 아이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음악을 만들며 자신들의 메시지와 생각을 녹여내는 K팝 팀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변화이기도 하다.

아울러 포크와 록이 유행하던 시절에 이 음악을 듣고 자란 구세대가 이 음악을 저항의 상징으로 활용한 것처럼, K팝을 듣고 자란 세대들은 이 음악을 자신들의 저항·표현 수단으로 자연스레 활용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단적인 예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 지난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은 ’미래라이프대학‘(직장인 대상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반대 농성에서 이 노래를 합창했다. 이 곡을 들으며 힘들게 학창시절을 보낸 뒤 이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에겐 학교의 처사는 불공정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이라는 노랫말을 지닌 ’다시 만난 세계‘는 자연스레 저항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작년 총리 퇴진과 왕실 개혁 등을 요구하며 태국에서 진행된 반정부 시위 속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졌다. 세계 젊은 세대의 저항가가 된 셈이다.

사실 K팝 아이돌 음악은 태생과 확산부터 국내외 소수자들의 연대에서 출발했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 황금기에서 작품성 없는 음악 취급을 받았고, 처음 해외에서 주목을 받을 때는 소수 마니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로 삼았다. K팝은 다양한 인종이 뭉친 팬덤의 연대 게릴라 활동을 통해 퍼져나갔고, 이제 주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음악이 됐다.

방탄소년단도 이 점을 분명히 안다. 멤버들은 “결국, 우리가 전달해야 할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한다. 나, 당신,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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