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압박에 꼬이는 가계대출 대책…난처한 금융당국

  • 뉴시스
  • 입력 2021년 3월 31일 05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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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무주택자 등 부동산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 금융당국이 난감한 입장에 놓였다. 현재 청년층·무주택자 규제 완화를 놓고 관계부처간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이 입김을 불어넣는 것은 정책 마련에 혼선만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31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9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 기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장기 무주택자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제공되는 각종 혜택의 범위와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우대 혜택을 현재보다 높일 예정”이라며 “소득 기준이나 주택 실거래가 기준 등도 현실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는 장기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들을 대상으로 적용되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기존 50~60%보다 더 높여주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9억원 이하 주택은 LTV 40%, 9억~15억원 미만 주택은 LTV 20%가 적용된다. 단 청년, 서민 등 일정 요건을 갖춘 무주택자들에게는 LTV 10%포인트를 추가 가산해 주기 때문에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는 LTV 50%, 조정대상지역에서는 6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간 금융위원회도 청년층과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지원을 위해 LTV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의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국토부 등 관계부처간 협의가 끝나지 않아 세부적인 내용은 미정인 상태다.

다만 일각에서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중시하는 국토부의 기조를 감안할 때 LTV 추가 가산폭을 상향하기 보다는, 가산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완화해 혜택의 범위와 대상을 늘리는 방안에 무게를 뒀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서민·실수요자 LTV·DTI 우대요건 적용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규제지역 내 주담대 서민·실수요자 요건을 충족해 LTV·DTI를 우대 적용받은 비율은 신규 취급액 기준 7.6%에 불과했다.

하지만 관계부처간 협의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나온 여권의 규제 완화 발언에 금융권은 또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됐다. 지난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으로 가계대출이 급격하게 증가하자, 금융당국은 연일 금융권에 가계대출 자제를 주문하며 가계부채를 ‘타이트’하게 관리해 온 상황이다.

금융위가 다음달 중순 이후 발표할 ‘가계부채 관리방안’도 현재 금융기관별로 관리하고 있는 DSR 관리지표를 차주별 DSR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금융회사별로 평균치만 관리하면 됐지만, 앞으로 개인별로 모두가 40%를 적용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가계대출을 ‘옥죄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정치권의 대출 규제 완화 압박에 나서면서 당초 금융당국이 마련한 가계대출 관리방안의 큰 틀이 여권의 요구에 맞게 수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여권의 대출 규제 완화 발언은 다음달 7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의혹으로 떨어진 민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대출 규제는 지난 공매도 금지 연장 당시를 연상시킨다”며 “금융 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과도한 간섭과 요구는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흔들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금융위는 “(홍 의장의 발언은)무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이해되며, 그 동안 정부가 밝혀온 정책검토 방향과도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서둘러 밝혔다.

그러나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계부채 관리방안에 대한 관계부처간 협의가 마무리되면, 발표 전 당정협의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며 “이 자리에서 금융당국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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