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여기서 굶어죽고 말겠다” 암태도 소작인들의 피울음

이진 기자 입력 2021-03-30 11:40수정 2021-03-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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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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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6월 5일 전라남도 목포재판소 구내가 갑자기 떠들썩해졌습니다. 400명 넘는 농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기 때문이죠. 농민들은 경찰이 붙잡아 예심에 넘긴 13명을 내놓으라고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목포에서 기선으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섬, 암태도 농민들이었죠. 단순한 농민이 아니라 전해 12월 결성된 소작인회 회원들이었습니다. 보리타작과 모내기 준비로 한창 바쁠 때 육지로 몰려갈 정도로 절박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암태도는 약 35㎢의 자그마한 섬입니다. 주민들은 농업으로 생계를 꾸려갔죠. 그런데 이 섬 농토의 3분의 2는 지주 문재철의 소유였습니다. 문재철은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북도에까지 땅을 소유하고 있던 만석꾼이었죠. 암태도만 해도 문재철의 땅을 밟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문재철이 추수한 곡식의 70~80%를 소작료로 받아간다는 점이었죠. 소작인들에게 문재철은 그야말로 ‘악덕 지주’였습니다.

1923년에 접어들면서 곳곳에서 소작쟁의가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소작료 인하와 소작권 이전 반대가 쟁점이었죠. 특히 암태도에서 가까운 전남 순천에서 소작쟁의가 성과를 거뒀습니다. 용기를 얻은 암태도 농민들도 문재철에게 소작료를 4할 즉 40%로 낮추라고 했죠. 거부하면 소작료를 내지 않는 ‘불납동맹’, 그래도 거부하면 농사를 짓지 않는 ‘파작동맹’을 하겠다고 선언했죠. 소작권을 빼앗으면? 그럼 우리끼리 공동경작을 하겠다고 맞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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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양보는커녕 힘깨나 쓰는 마름을 앞세워 농민을 각개격파 하는 식으로 소작료를 빼앗아갔죠. 그러다 양측이 서로 충돌해 소작인들이 다쳤습니다. 소작인회의 고발을 받은 일제 경찰은 지주-소작인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며 뒷짐을 지었죠. 일제 공권력은 지주 편이었습니다. 소작인들은 면민대회를 열어 5월 15일까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문재철 아버지의 송덕비를 깨버리겠다고 결의했습니다. 효자였던 문재철의 약점을 노린 전술이었지만 결국 송덕비가 부서지고 양쪽의 싸움이 터졌죠.



일제 경찰은 이때다 싶어 소작인회 쪽 13명을 구속해 목포로 끌고 갔습니다. 싸움에 휘말리지 않은 소작인회 회장 서태석 등 간부까지 싸잡아 압송했죠. 문재철 쪽은 2명만 구속했고요. 억울한 마음을 가눌 길 없던 소작인들 400여 명은 6월 4일 돛단배를 타고 목포로 쳐들어갔습니다. 쌀과 솥, 김치 등을 챙겨 관공서 마당에서 밥을 지어먹고 모기에 물리며 이슬을 맞는 한뎃잠을 자면서 동료들을 풀어달라고 했죠. 당황한 일제 관헌은 먼저 해산하면 선처해보마고 했죠. 양식도 떨어진 소작인들은 6월 8일 일단 철수했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13명을 상해와 소요죄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암태도 소작인들은 이번에는 600여 명이 목포지청에서 ‘다 같이 굶어죽자’며 단식농성에 들어갔죠. 7월 8일부터 ‘아사동맹’에 돌입한 겁니다. 하늘을 이불로, 땅을 요로 삼아 옷이 흙투성이가 되고 주린 배를 움켜쥐면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들 중에는 칠순 노인들과 젖먹이를 품에 안은 엄마들이 무려 200명이 넘었죠. 농성장은 노인들의 신음소리와 젖 달라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처참했습니다. 보다 못한 목포 사람들이 죽을 쑤어 왔지만 노약자를 빼고는 먹는 사람은 별로 없었죠. 단식농성은 14일까지 무려 6박 7일간이나 이어졌습니다.



암태도소작쟁의에 각계 사회단체들의 성원이 집중되고 해외에서까지 기부금이 들어오자 일제는 중재에 나서야 했죠. 결국 8월 30일 소작료를 4할로 하고 지주가 2000원을 기부하며 서로 고소를 취하하고 송덕비는 소작인회가 복구하기로 했습니다. 암태도소작쟁의는 1920년대 최고의 농민 승리이자 항일운동으로 꼽히죠. 지도자 서태석은 초기부터 동아일보 목포지국 설준석 기자와 손잡고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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