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블링컨, 퇴장하는 기자들 불러세우며 中에 반격

뉴욕=유재동 특파원 입력 2021-03-19 10:03수정 2021-03-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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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이 신장·홍콩 인권 문제 언급하자
中 양제츠 “미국은 흑인 살육 멈추라” 응수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이틀간의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이 첫날부터 예상외로 높은 수위의 설전을 주고받았다. 미국은 인권 등 중국이 민감해 하는 ‘아킬레스건’을 집중 공격하면서 압박에 나섰고, 중국은 오히려 미국이 흑인을 ‘살육’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공격하면서 내정간섭을 거부한다고 맞섰다.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그리고 중국의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8일 오후(현지 시간)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첫 회담을 가졌다.

이날 회담은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까지 벌어졌다. 언론에 공개되는 모두발언은 양측이 짧게 회담 요지와 덕담을 주고받는 게 외교상 관례지만, 이날 블링컨 장관은 중국 측의 발언이 길어지자 퇴장하는 기자들을 다시 불러세우면서까지 반격을 이어갔다. 당초부터 글로벌 주도권을 둘러싼 양측의 핵심이익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쉽지 않은 회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냉랭한 분위기가 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블링컨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미국은 중국의 행동들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면서 시작부터 포문을 열었다. 그는 “미국은 규칙이 기반이 되는 질서를 수호하려 한다”며 “질서가 없으면 세계가 훨씬 더 폭력적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신장과 홍콩, 대만 등에서 중국의 행동과 미국에 대한 사이버공격, 미국 동맹들에 대한 강요 행위가 글로벌 안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규칙 기반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며 “이들이 단순히 내부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오늘 이슈를 제기할 필요를 느끼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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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 장관은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증진하고 규칙에 기반 한 국제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외교의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며 “(규칙에 기반 한) 이 시스템은 이견을 평화적으로 해소하고 다자 간 노력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며 모두가 같은 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확신으로 글로벌 무역에 참여하는 것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시스템이 아니라면 남는 건 승자독식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더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설리번 보좌관 역시 “우리는 중국과 갈등을 일으킬 의도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극심한 경쟁을 기꺼이 할 것이고 우리의 원칙과 국민, 우방을 위해 싸울 것”이라며 핵심 가치에 있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미국의 기선제압에 중국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양제츠 정치국원은 “미국은 군사력과 금융의 우월성을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데 사용하고 있으며 국가안보를 글로벌 무역의 미래를 위협하는 데 남용하고 있다”면서 “신장과 홍콩, 대만은 중국 영토의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고 중국은 내부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확고하게 반대한다”고 맞섰다.

그는 이어 “미국은 자신들의 문제를, 중국은 중국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며 “미국이야말로 흑인 시민들이 ‘살육’당하면서 인권이 최저점에 있다”고 꼬집었다. 양 정치국원은 “냉전적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관계에서 대결과 갈등 없이 상호이익과 ‘윈-윈 협력’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언론에 공개되는 모두발언이 통상적인 회담 분위기와 다르게 흐른 것은 양제츠의 발언이 길어지면서부터다. 그가 각자 2분씩 약속했던 시간을 훨씬 넘기며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거칠게 파고들면서 회담 분위기가 시작부터 냉랭해졌다.

양 정치국원은 “미국은 자신의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게 자기들의 민주주의를 밀어붙이는 것도 그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내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는 미국 민주주의에 대해 별반 신뢰가 없다”면서 “여론조사를 보면 중국의 지도부가 중국 국민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양제츠는 또 “미국은 전 세계를 대표하지 않는다. 단지 미국 정부만을 대표할 뿐”이라고 재차 비난했고 옆에서 왕 부장도 “중국은 미국 측의 부당한 비난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거들었다.

중국 측 발언이 끝나고 방송 카메라가 자리를 비키려 하자 블링컨 장관은 갑자기 “잠시만”이라고 말한 뒤 기자들을 제자리로 돌려세웠다. 그러고는 양 정치국원과 왕 부장을 향해 “여러분의 발언이 길어졌기 때문에 나도 본격 회담에 들어가기 전에 몇 마디를 더 하겠다”면서 다시 발언을 이어갔다.

블링컨 장관은 “지금까지 100여 개 나라와 통화를 했는데 이들은 미국이 동맹들에게 돌아온 것에 대해 깊이 만족해했다”면서 “그리고 당신들 정부가 하는 행동들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듣고 있다”고 재반박했다.

그러고는 “미국 리더십의 특징은 더 완벽한 연방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추구이며 그래서 우리도 완벽하지 않다”며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변호 발언을 시작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도 실수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런 도전들을 외면하지 않고 투명하게 맞서려고 노력해 왔다”면서 “가끔은 고통스럽고 보기에도 좋지 않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한 국가로서 강해지고 나아지고 더 단합이 되곤 했다”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급기야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국의 최고 지도자에 오르기 전 만났던 일화까지 소개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그는 “바이든은 그때 미국에 반대해 패를 거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했다”면서 “이는 지금도 사실”이라고 못 박았다.

CNN방송은 “양측이 이례적으로 긴 발언을 주고받았고 특이하면서 가끔 가시가 있는 공방이 오갔다”고 보도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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