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반격,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연설의 전말 [최영해의 폴리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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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3월 12일 14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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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노무현 정부 때 구속되자 ‘차라리 암살을 당했더라면…’
경선 치르다 원수 된 정적(政敵)의 세계
박근혜, 인사 추천리스트 보고 “이명박 대통령 사람 아닌가요?”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주십시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입을 맞춰서 저를 헐뜯는 것을 방어하기도 참 힘이 듭니다.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 됐습니까?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2002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인천에서 열린 경선에서 ‘기호 2번’ 노무현 후보의 연설은 격앙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6.25 전쟁 당시 좌익 활동을 한 장인에 대한 이인제 후보의 공격에 맞장을 뜨는 연설이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가 2002년 4월 경북 포항 남구 실내체육관에서 서로 얼굴을 돌린 채 냉랭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동아일보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가 2002년 4월 경북 포항 남구 실내체육관에서 서로 얼굴을 돌린 채 냉랭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동아일보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극히 감성에 호소한 연설은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는 이 한 마디는 노무현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팩트체크를 벼르던 이인제의 주장은 이내 묻히고 말았다. 이념보다는 사랑을 앞세운 노무현의 전략은 성공이었다. 당초 준비한 연설 원고에도 없는 즉흥적인 발언이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노 후보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갔다. 작심을 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숨 가쁜 목소리가 쩌렁쩌렁 체육관을 울려댔다.

“그렇게 하면(아내를 버리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서 심판해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 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전 무역전시관에서 열린 2002년 3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1,2위를 다투던 이인제 후보의 연설을 듣는 노무현 후보의 표정이 심각해 보인다. 동아일보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대전 무역전시관에서 열린 2002년 3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1,2위를 다투던 이인제 후보의 연설을 듣는 노무현 후보의 표정이 심각해 보인다. 동아일보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목소리였다. 노무현의 연설을 단상에서 듣고 있던 이인제 후보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정색을 하고 반격하는 태세에 당황한 듯 단상에 놓인 물 잔을 입에 대고 한 모금 들이켰다. 이념 검증을 제대로 해보자는 이인제의 공격이 ‘그럼 사랑을 버리라는 말이냐’는 역공으로 바뀌는 절묘한 순간이었다. 호남의 심장 광주에서 예상을 뒤엎고 노 후보가 1등을 거머쥔 데 이어 인천에서 쐐기를 박는 연설이었다.

앞서 연단에 오른 이인제는 노 후보 장인의 좌익 활동을 문제 삼으면서 노무현의 사상을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인제는 “급진 좌파가 우리 당을 점령하고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고 포문을 열었다. 맥아더 사령관의 인천상륙작전 도시인 인천에서 그는 이념 문제를 승부수로 던진 것이다. 노무현은 기다렸다는 듯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2002년 3월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강원지역 투표 도중 노무현 후보가 느긋해 보이는 반면 이인제 후보는 물을 마시고 있다. 동아일보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2002년 3월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강원지역 투표 도중 노무현 후보가 느긋해 보이는 반면 이인제 후보는 물을 마시고 있다. 동아일보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는 데 누가 적임자인지 검증을 해보자는 이인제의 목소리는 노무현의 이 한마디에 묻히고 말았다. 유세장에서 공수(攻守)를 180도 뒤바꿔놓는 순간이었다.

●노무현 장인 좌익 문제, 이인제 캠프에서도 강온 기류

이인제가 제기한 노 후보 장인 문제는 분단된 한국 정치사에서 예민한 사안이었다. 6·25 전쟁 당시 부역을 했다는 문제는 대중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패였다. 만약 이인제 대세론이 이어지고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이 미풍에 그쳤다면 이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인제 캠프 안에서도 갑론을박(甲論乙駁)이 이어졌다. ‘색깔론’으로 번지면 자칫하다간 역풍이 불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 후보의 돌아가신 장인을 관에서 꺼내야 하는, 참으로 거북한 문제였다.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에게 1위를 빼앗긴 이인제 캠프는 다급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민주당 경선을 좌지우지 한다는 ‘음모론’에 대한 확신은 깊어갔다. 역전의 드라마를 쓰지 않고선 이대로 패할 공산이 커졌다.

2002년 4월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 부산광역시 대회에서 노무현 후보가 노사모 회원들과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2002년 4월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 부산광역시 대회에서 노무현 후보가 노사모 회원들과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이 논란은 한 언론 매체의 보도를 놓고 벌어진 공방이 시작이었다. 이인제 캠프의 한 특보가 2002년 4월 초 민주당 기자실에서 “노 후보의 장인이 6.25 때 부역한 혐의로 복역 중 사망했다”며 한 주간지 보도를 인용했다. 노 후보 캠프에선 치졸한 색깔론이자 연좌제 프레임이라고 격앙했다. 급기야 노 후보가 MBC 100분 토론에서 “당시 우리 집안에선 장인 때문에 내가 판사 발령을 못 받을까봐 걱정해 결혼을 반대했지만,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걸 각오하고 결혼했다”고 반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노무현은 ‘이 후보가 말하는 검증이란 게 이런 식이냐’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막상 이 후보는 토론에서 “장인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적이 없다”면서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방송사 토론회 도중 서울 여의도 민주당 기자실에선 이인제 캠프의 움직임이 바빴다. 캠프 참모들이 기자들에게 “노 후보의 장인이 남로당 간부로 활동하면서 반동문자로 지목된 양민 10명을 학살한 사건에 관여했다”며 수사기록 사본을 돌렸다. 이인제가 방송 토론에서 유감이라고 했을 때 참모들은 오히려 불을 지핀 것이다. 이런 양면 작전에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인 부부가 2002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 날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 소년의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캐롤송을 부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당선인 부부가 2002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 날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 소년의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캐롤송을 부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비정한 경선의 세계
정치적 라이벌의 세계는 살벌하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경쟁에선 목숨을 걸어야 한다. 선거 시즌 후보 캠프에는 상대방을 공격할 비장의 무기를 쌓아 놓고 있다. 최종 대선후보로 선출되기까지 그 험난한 길에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네거티브 전략은 빼놓을 수 없다. 캠프에서는 상대의 밑바닥까지 뒤진다. 언제 카드로 써먹느냐에는 선거판의 유 불리 등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다. 같은 당에서의 관계는 상상을 초월한다. 누구보다 상대를 꿰뚫고 있어 어떤 것을 공격할지는 선택의 문제다. 그래서 경선의 후유증은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당내 경선은 본선보다 더욱 치열하다. 한솥밥을 먹는 같은 정당에서 인정사정없이 싸우다보면 철천지원수가 될 수도 있다. 노무현과 이인제가 그랬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그랬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의 급부상은 초반 압도적인 1등을 달리던 이인제를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노무현이 치고 올라올수록 이인제 캠프는 초조한 분위기였다. 대세론에 취한 이인제 캠프에선 청와대 비서실 인선까지 짜놓고 있을 정도였다. 이인제 자신은 동분서주(東奔西走)했지만 정작 캠프에선 김칫국부터 마시며 때 이른 논공행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선거에서 초기 대세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2002년 이인제 캠프가 보여줬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 부인 권양숙 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대통령 관저를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 부인 권양숙 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대통령 관저를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


●이인제의 ‘뒤끝’
이인제의 중도 포기로 이른바 ‘국민참여경선’은 흥행이 시들해졌다. 이 후보를 바라보는 당 안팎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4월 27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선 50일 간 전국을 돈 선거 이벤트가 막을 내렸다. 노무현 대선후보 확정으로 축제장이 돼야 할 자리엔 이인제는 없었다. 경선 레이스에 참여한 6명 후보 중 이인제와 유종근 전북지사가 불참했다. 유 지사는 경선 초반 검찰의 뇌물수수 조사로 구속된 상태였다.

이인제는 노무현의 당선을 알리는 날, 싱가포르로 출국해버렸다. 대선후보 선출식과 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는 빛이 바랬다. 청와대 개입 등 ‘음모론’을 확신한 이인제로선 ‘축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6일 동안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돌며 이후를 구상했다. 이인제는 모든 것이 청와대의 개입에 따른 공작으로 봤다. 더 이상 들러리로 서지 않겠다며 박차고 나가 강렬한 뒤끝을 남겼다.

청와대 선거 개입설을 주장하면서 경선 포기를 고민하는 이인제 후보가 2002년 3월 밤 서울 자곡동 자택에서 고심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청와대 선거 개입설을 주장하면서 경선 포기를 고민하는 이인제 후보가 2002년 3월 밤 서울 자곡동 자택에서 고심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노무현 정부에서 구속된 이인제, 무죄선고 받았지만…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이인제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받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자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받은 것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 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노무현 정부 출범 1년이 조금 흐른 2004년 5월 19일 대검 중수부(부장 안대희)는 이인제 자민련 의원을 구속했다. 캠프의 공보특보를 통해 한나라당이 제공한 불법자금 5억 원 가운데 2억50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정치자금법 위반이란 죄목이었다.

이인제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차라리 암살을 당하면 동정이나 받지만 ‘돈을 받아먹었다’는 것은 그것도 안 되지 않느냐”며 정치 탄압의 희생양이라고 눈물을 쏟았다.

이인제 의원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된 후 이 의원 지지자들이 2004년 5월 충남 논산시 지구당사 안과 밖을 봉쇄하고 검찰의 연행에 맞서고 있다. 동아일보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인제 의원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된 후 이 의원 지지자들이 2004년 5월 충남 논산시 지구당사 안과 밖을 봉쇄하고 검찰의 연행에 맞서고 있다. 동아일보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두 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억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1년 뒤 항소심에선 반전이 일어났다. 서울고법은 “검찰 수사에서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측근이 돈 상자를 전달한 경위와 시점을 특정하지 못하는 등 진술에 신뢰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06년 6월 대법원도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인제는 “이번 판결로 노무현 정권의 정적 죽이기는 파탄 났다”고 일갈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뇌리엔 아직도 이인제의 구속 장면이 뚜렷이 각인돼 있다. 경선에서 그렇게 치고받은 대가였을까. 어쩌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됐을 때 이인제의 구속은 예고된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인제 의원이 2004년 5월 검찰의 소환 조사에 출두하면서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일보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인제 의원이 2004년 5월 검찰의 소환 조사에 출두하면서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일보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명박 박근혜의 긴 싸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맞붙은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싸움은 보수 정권 탄생 뒤에도 길고 모질게 이어졌다. 박근혜 캠프는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 의혹과 내곡동 땅 사저(私邸)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다스 문제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맨 처음 불거진 일이었다. 이명박 캠프에서는 영남대 비리 의혹과 고(故) 최태민 목사 파일을 움켜쥐고 있었다.

2007년 8월 청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가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07년 8월 청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가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 대통령은 2008년 취임 후 박근혜와 멀찌감치 거리를 두었다. 경선의 후유증이 컸던 만큼 만남 자체를 꺼렸다. 이 대통령은 박근혜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게 핵심 측근들의 회고다. MB의 대선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건설도 친박계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4대강 사업으로 규모를 축소하고 궤도 또한 수정해야 했다.

2007년 8월 경남 창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합동유세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표정이 어색하다. 동아일보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2007년 8월 경남 창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합동유세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표정이 어색하다. 동아일보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행정수도 건설 사업에 제동을 건 MB의 세종시 수정안도 친박 의원들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권 초 한참 동력을 얻어야 하는 시기에 대통령의 프로젝트는 번번이 좌절됐다. 세종시를 행정도시가 아닌 기업도시로 만들어 실질적인 혜택을 주자는 이명박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입법 좌절에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친박계의 반대가 한 몫 한 것은 물론이다. 여당 속 야당인 친박은 이명박 청와대의 고민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친박과 친이 간의 반목은 더욱 심해졌다.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사람은 기용하는 한이 있어도 MB측 인사들은 쓰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MB 정부에서 중용됐던 인사가 추천 리스트에 올라오면 “이명박 대통령 사람 아닌가요?”라는 한마디로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인사를 발탁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MB와 가까운 인사가 중용되는 일은 없었다. 경선에서 격하게 싸운 앙금은 가시지 않았다.

2009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쇼욤 라슬로 헝가리 대통령 초청 국빈 만찬에서 건배사를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자리에 앉아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09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쇼욤 라슬로 헝가리 대통령 초청 국빈 만찬에서 건배사를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자리에 앉아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과 이재명의 가시 돋친 설전, 이번엔?
대선이 1년 남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은 바로 대선으로 직행한다. 4년 전 대선에서 민주당에선 문재인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가시 돋친 설전이 이어졌다. 대선 유력 주자인 이재명이 어떤 선택을 할지, 청와대는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야의 당내 선거에서 맞붙을 상대는 사선을 넘나드는 공방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노무현과 이인제, 이명박과 박근혜의 죽기 살기 식의 싸움을 또 한 번 지켜봐야 할지 모른다. 이번에는 누가 주인공이 될까. 카운트다운은 시작됐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017년 3월 서울 목동 CBS사옥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합동토론회에 앞서 사회자 정관용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성남시장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017년 3월 서울 목동 CBS사옥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합동토론회에 앞서 사회자 정관용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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