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의 슬픔 교향곡과 질풍노도 시대 [유(윤종)튜브]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1-11 15:40수정 2021-01-1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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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교향악단이 20, 21일 성시연 지휘로 정기연주회 ‘하이든과 쇼스타코비치’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합니다. 하이든 교향곡 44번 ‘슬픔’과 루토스와프스키 ‘장송음악’, 쇼스타코비치 ‘실내 교향곡’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처음엔 ‘슬픔 교향곡’ 뒤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장송 미사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무대 위 거리두기가 용이한 곡들로 바뀌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실내 교향곡은 작곡가가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헌정한다’고 말한 곡입니다. 성시연 지휘자는 이 연주회가 ‘코로나19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콘서트’라고 밝혔습니다.

눈길이 가는 작품은 첫곡인 하이든의 교향곡 44번 ‘슬픔’입니다. 독일어로 ‘Trauer’인데, 슬픔 외에 애도, 장송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전해지기로는 하이든이 자기 장례식 때 이 곡의 느린 3악장을 연주해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이든이 슬픈 음악을? 그는 명랑하고 밝은 이미지로 우리에게 알려져 왔습니다. ‘우등생’ 느낌을 전해주는 그의 트럼펫협주곡이 대표적이죠. 성품도 온화했서 생전 별명은 ‘파파(아빠) 하이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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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하이든도 슬픈 음악을 썼습니다. 슬픔 교향곡 다음의 45번 ‘고별’ 교향곡도 그렇습니다. 하이든은 거의 평생을 에스테르하지 후작이라는 귀족의 궁정 음악가로 일했습니다. 어느 날 후작이 오래 궁정 오케스트라에 휴가를 안 줘서 단원들이 가족들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 하이든이 이 고별 교향곡을 썼습니다. 연주를 마친 단원들이 하나둘 씩 무대 뒤로 나가버리고, 마지막에는 바이올린 주자 두 사람만 남습니다. 이걸 본 후작이 “우리도 가야겠네. 알았어. 휴가들 가게”라고 영을 내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얘기인즉 유쾌하지만 이 고별 교향곡 마지막 악장도 비장할 정도로 슬프게 시작해서 조용히 끝나는 악장입니다.

그런데 이런 슬픔은 당대의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질풍노도 양식’,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직역하면 ‘폭풍과 충동’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본디는 같은 시대 독일에서 일어난 문학운동의 이름이었습니다. 주인공들은 뜨거운, 때론 미치광이 같은 열정에 사로잡힌 인물들이죠. 실러의 희곡 ‘도둑떼’(Die R¤uber)나 당대를 강타한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년)이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음악에서의 ‘슈투름 운트 드랑’도 이런 분위기의 산물이었습니다. 역시 뜨겁고 광기 같은 열정이나 슬픔을 표현했죠. 단조 선율을 선호했고, 선율이 큰 폭으로 건너뛰고, 급박한 리듬을 강조했습니다. 하이든뿐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자신을 찌르는 장면의 비장한 음악은 이 양식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 G단조입니다.

물론 슈투름 운트 드랑이라는 유행이 없었어도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슬픈 음악들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사의 천재들도 시대의 산물이며, 이들의 천부적인 재능도 적합한 시대와 만나 조화를 이뤘을 때 더욱 빛났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하이든의 장례식에서는 교향곡 44번 ‘슬픔’ 3악장이 연주되었을까요? 그런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이든의 장례식을 함께 한 음악은 그의 동료이자 친구였고, 경쟁자였고, 서로 존경을 표현하기 주저하지 않았던 모차르트의 레퀴엠이었습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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