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돼서야 ‘생지옥’ 벗어난 간호사 “동료들에 미안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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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2월 31일 0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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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에서 의료진이 창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현재까지 구로구 요양병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는 175명 발생했다. 이중 129명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이송됐지만, 46명은 아직 병상을 배정받지 못하고 격리 중이다. 의료진 확진자는 간호사 9명이다. 2020.12.29/뉴스1 © News1
29일 오후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에서 의료진이 창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현재까지 구로구 요양병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는 175명 발생했다. 이중 129명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이송됐지만, 46명은 아직 병상을 배정받지 못하고 격리 중이다. 의료진 확진자는 간호사 9명이다. 2020.12.29/뉴스1 © News1
“지옥 같고 전쟁터 같은 병원에서 먼저 나왔다는 게 미안할 뿐입니다.”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간호사 김모씨(36·여)는 30일 수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병원은 지난 15일 코로나19 확진자 2명이 나온 이후 이날 오후 기준으로 누적 확진자가 190명으로 불어났다.

김씨는 지난 29일 병원에서 일하던 중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인근 생활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확진 판정을 받기 전까지 분리조치도 제대로 되지 않는 환경속에서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일을 했다. 김씨는 “간호사끼리는 탈출하는 방법은 코로나19 확진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며 ‘아비규환’인 병원 상황을 설명했다.

◇간호사 24명이 환자 150여명 관리…“3일간 씻지도 못해”

김씨는 “간병인들도 없는 상황에서 환자들 식사 챙기고 기저귀 갈고 폐기물 정리하고 혈압, 당뇨 등 상태 체크하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고 호소했다.

확진자가 계속 늘면서 간병인들까지 일을 그만뒀다. 이 때문에 남아있는 24명의 간호사가 음성환자, 밀접자, 확진자로 분리된 5개 병동을 모두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씨를 포함한 9명의 간호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의료인으로서 환자를 버리고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씻지도 못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인력의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초기 확진자 전원 분리했어야…인근병원 수용의사 구로구가 막아”

김씨는 방역 당국의 초기 대처에 아쉬움을 표했다. “초기에 확진자들과 비확진자들을 제대로 분리조치만 할 수 있었어도 확진자가 이렇게 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요양병원은 감염병관리 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음압병실도 거의 없고 여유 병상도 없다”며 “최초 확진자가 나왔을 때 격리가 어려웠음에도 구로구 보건소와 서울시 역학조사단은 확진자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꼬집었다.

김씨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초기, 인근 요양병원에서 한 층을 비우고 미소들요양병원의 비확진자 20명을 받겠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그러나 구로구 보건소는 환자 이송을 막았다. 환자를 받겠다는 병원 역시 구로구에 위치한 병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감염관리에 취약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보호자들이 이에 대해 항의하자 보건소가 확진자 이송을 막았음에도 보호자에게는 해당 병원이 거부했다고 전하면서 혼선을 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중수본 2주만에 방문…환자이송·보급품 지침 아직 없어

또 김씨는 “초기 확진자가 발생하고 난 후 구로구 보건소와 서울시 역학조사단이 중앙지시체계 시스템을 만들어 현장을 지휘했지만 최초 방문 이후 현장에 온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에 중앙 지시를 받으라고 하면서 답이 오는데도 몇시간이 걸리고 지시사항도 수시로 바뀌어 혼선이 있었다”며 “방호복이나 환자처치에 필요한 일회용품 등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사비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확진자 발생 초기에 구로구 보건소에서 병원에 지급한 보급품은 N95 마스크 두박스가 전부였다.

김씨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의료진 및 병원직원들이 27일 청와대 국민청원과 언론사 제보를 한 이후에야 어제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이 현장을 방문해 3일 안에 환자 이송을 마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다만 남은 환자들의 이송 방안이나 보급품에 대한 구체적 지침은 여전히 부재한 상황이다. 김씨는 “이제야 중수본에서 나섰으니 조금이나마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할 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전 멀쩡했던 환자 오후 갑자기 사망…“하루 빨리 이송해야”

김씨는 하루 빨리 환자들을 타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확진자 병동에서 일할 때 당뇨와 치매 증상밖에 없던 노인도 오전에 멀쩡하다가 오후에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사람도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서 하루 빨리 안전하게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병동으로 환자를 옮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30일 오전 미소들요양병원에 남은 코로나19 확진자 전원을 모두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원 조치하기로 했다. 또한 병원에 남은 비확진자 돌봄·의료 지원을 위해 의료인력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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