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개조 밀어붙이는 서울시… 의견수렴은 제대로 했나[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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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재조성’ 서울시 절차 논란
市 “4년간 300회 넘게 소통” 주장
공론화 참여 단체들 반응은 싸늘
“시뮬레이션 제안 등 수용 안돼… 명분 갖춰주려 자리 채워준 느낌”

이지훈 사회부 기자
이지훈 사회부 기자
경복궁과 청와대로 뻗어있고 광화문과 맞닿는 서울에서 가장 넓은 길 세종대로는 ‘국가대표’ 광장이 들어설 수 있는 주요 후보지로 꼽혀 왔다. 수도 서울을 상징하는 ‘광화문광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처음 실행에 옮긴 건 2006년 민선 5기로 취임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었다.

당시에도 광화문광장을 어떻게 디자인할지는 중요한 화두였다. 시민 여론 수렴 등을 토대로 광장을 중앙에 만들고 차로를 양옆으로 두는 ‘중앙안’이 채택됐다. 그 결과 2009년 광화문광장은 양측에 각각 5개 차로를 두고 가운데에 광장을 조성한 모습으로 탄생했다.

그 후 11년 만인 올해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섰다. 광화문광장 재조성은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이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8년 3선에 도전하며 내세운 공약이었다. 지금의 중앙광장이 아닌 서쪽으로 치우친 ‘편측 광장’으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넓히고 주한 미국대사관 쪽은 7∼9차로 양방향 차도를 남겨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5개월 앞둔 시점에 791억 원의 예산이 드는 사업을 강행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보행자 중심의 열린 광장을 만들겠다면서 정작 시민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담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것이다. 국민의힘 정의당 등 야당은 “‘광장 성형’을 중단하라”고 반발했고 시민단체들은 감사 청구와 무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 11년 만의 ‘새 광장 만들기’ 타당성 논란
박 전 시장은 현재 광화문광장에 대해 “도로로 단절되고 고립된 ‘교통섬’이며 역사성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주변에 표현해 왔다. 광화문광장이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촛불집회의 상징으로 부각되면서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재조성 구상은 더욱 구체화됐다.

서울시는 일제강점기에 훼손됐던 광화문 앞 월대(月臺)를 복원하고 보행 공간을 넓히겠다며 세종대로를 전면 광장화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광장에 걸어서 접근하기 불편하고 차량에 둘러싸여 있어 대화가 어렵다는 일부 시민들의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예산과 교통 문제 등을 고려해 일단 편측 광장을 만들기로 했다.

정상택 서울시 광화문광장추진단장은 “지상은 전면 보행이 가능한 광장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예산 수천억 원이 소요되고 한번에 도로를 없애면 시민들의 교통 불편이 가중돼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광장 재조성에 따른 교통 대책의 일환으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광화문역사를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광장’을 만드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시민단체 등에서 터져 나왔다.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광화문광장을 상징하는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동상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기 때문이다. 현행 10차로에서 7∼9차로로 줄일 경우 교통 정체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치우친 광장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였던 승효상 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승 전 위원장은 2005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함께 ‘서측안’을 처음 제안한 인물로 문 대통령과 경남고 동창이다.

정상택 단장은 “특정인의 안이어서 추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주말 유동인구, 주변 경관과의 연계성 등을 고려해 업무지구인 동쪽보다는 소규모 상권, 문화시설이 밀집한 서쪽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4년간 300회 소통” vs “답 정해둔 요식행위”
사업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서울시는 “4년간 300회가 넘는 시민과의 소통 끝에 나온 결론”이라고 밝혔다. 진희선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까지 나서 “소통에 참여한 시민만 2만 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 제기된 지적 사항이 실제 사업계획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서측으로 치우친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면 계획을 확정하기 전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김은희 도시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광장을 한쪽으로 옮기기 전에 어느 쪽이 시민들에게 덜 불편한지 통행을 막아보고 정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서울시는 온갖 요구를 거부하면서도 계속 소통하자며 자리를 만들었다”며 “명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소통 횟수만 채워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보행자 중심의 광장을 만들자면서 GTX 광화문역사 신설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발이 있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윤은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서울시의 방안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규모 토건사업을 하려는 것”이라며 “소중한 혈세를 들여 멀쩡한 광장을 뒤엎는 게 걷기 좋은,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고, (여론조사 재실시는) 4년의 소통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며 추가 의견 수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보가 서울시의 공론화 과정을 살펴본 결과 시민들을 상대로 한 워크숍, 역사·인문학 강좌 등 광화문광장 재조성 관련 의견 수렴과 직결되지 않는 행사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행사 참석 인원도 100∼300명 규모였고 이들 가운데 여러 행사에 중복 참여한 경우가 많아 의견 수렴 대상 시민은 수백 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참석자를 모집했는데 대부분 박 전 시장의 시정에 관심이 많거나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사실상 ‘어용시민’들만 뽑아서 논의했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또 지난해 12월 25개 자치구에서 성·연령별로 선발한 268명을 대상으로 이틀간 토론회를 열었고 16시간의 숙의 과정을 거친 뒤 설문조사를 실시해 64.9%가 ‘서측안’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설문 역시 절차적 타당성을 갖춘 여론조사가 아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참석자는 “제대로 된 여론을 살피고 싶으면 신뢰 있는 기관에 의뢰해 설문 문항도 짜고 표본오차에 대한 발표도 해야 하는데 해당 설문은 워크숍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14년 전 오 전 시장이 광화문광장 사업을 추진했을 당시에는 시민, 전문가, 시민단체 등 1만24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중앙광장을 원하는 시민이 44.4%로 가장 많았고 ‘서측안’이 포함된 ‘편측안’을 지지하는 시민은 29.7%로 2위에 그쳤다.

이 때문에 서울시가 소수 시민의 여론으로 사업을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은주 간사는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물어보면 광화문광장을 왜 다시 고쳐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며 “시민들이 큰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규모 토건사업을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보궐선거 앞두고 그들만의 ‘닫힌 광장’ 만들 우려”
박 전 시장이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과 관련해 가장 마지막으로 취한 조치는 5월 23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공관으로 불러 의견을 들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활동가들은 박 전 시장에게 다양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7월 박 전 시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할 때까지 서울시 차원의 공식 발표는 없었다.

이 상황을 두고 서울시와 시민단체는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박 전 시장이 시민단체와의 면담 이후에도 원안 추진을 강조했다고 한다. 정상택 단장은 “시장님이 면담 며칠 뒤 서울시 간부들에게 ‘어떤 흔들림도 없이 당초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자’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또 4년간 추진해온 사업인 만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반대 의견을 들으려 했던 박 전 시장의 뜻을 공무원들이 왜곡하려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은희 센터장은 “광장이 모든 시민의 열린 공간인 만큼 논의도 열려 있어야 하는데 서울시는 눈과 귀를 닫고 ‘닫힌 광장’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궐선거를 5개월 앞둔 시점에 시장 권한대행의 주도로 사업이 진행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도시연대 등 사업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전문가들은 “서울의 백년대계와 직결된 사업인 점을 고려해 광화문광장 재조성 관련 의사 결정과 집행은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새 시장이 책임지고 추진하는 게 타당하다”고 성명을 냈다. 서울시의회 야당 의원들도 23일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수장 없이 강행한 졸속 행정의 폐해는 누가 책임지는가. 보궐선거에서 심도 있게 토론하고 시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지훈 사회부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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