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무대 속 배우가 몸 잘쓰도록 하려면?…연극계서 ‘이 감독’ 각광

김기윤 기자 입력 2020-11-16 15:01수정 2020-11-1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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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무대, 막이 오르고 조명이 켜졌을 때 관객이 가장 먼저 보는 것? 배우의 몸이다. 연기나 대사보다 관객은 배우의 몸을 통해 직관적으로 캐릭터를 읽기 시작한다. 구석에 쭈그려 앉은 배우를 보면 말이 없어도 처연함을 느끼듯 몸도 정서와 감정을 드러낸다.

극에서 배우의 몸짓, 동작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연극계 ‘움직임 감독’의 활약이 돋보인다. 다양한 작품에서 배우의 움직임을 지도하는 남긍호(57) 김윤규(49) 이윤정(44) 감독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인간의 몸이라는 질료에서 움직임을 끌어내 (역의) 존재감을 살려내는 역할”이라며 “서고 앉는 자세에 따라서도 목소리 톤, 감정, 눈빛이 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각각 마임이스트, 무용수, 안무가 출신으로 ‘몸 쓰기의 달인’인 이들은 특정 장면의 대본에만 ‘갇혀’ 있던 움직임을 무대 위로 소환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사만으로 뭔가 부족할 때 몸 연기나 군무를 짤 정도로 극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전체적 움직임은 물론 배우의 이미지와 동선을 살피며 그에 어울리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공연 중인 국립극단 ‘발가락 육상천재’의 남 감독은 “달리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비사실적이며 익살스럽게 그렸다. 같은 의상을 입은 배우 두 명을 무대 여기저기서 빠르게 등장시켰다가 퇴장시켜 한 사람인 듯 보이게 하는 트릭도 넣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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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깨나 본 관객에게도 움직임 감독이라는 호칭은 생소하다. 프로그램 북의 제작진 크레디트에 ‘움직임 지도’ ‘움직임 디자이너’로 표기되거나 ‘안무’ ‘안무 감독’으로 뭉뚱그려질 때도 있다. 다만 무용이나 뮤지컬 안무와 달리 연극의 몸짓을 설명하기엔 ‘움직임’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립극단의 차기작 ‘햄릿’을 맡은 김 감독은 “연극에선 ‘배우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튀지 않아야 한다”며 “배우의 신체조건 성별 연령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인 동작이 장면 안에서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했다.

움직임 감독의 역할 확장은 몸을 통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중시하는 현대 연극의 흐름과도 맞닿아있다. 이 감독은 “옛날엔 ‘이 장면을 그냥 현대무용처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거나 ‘왜 움직여야 하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걷고 뛰고 숨쉬는 움직임 모두 디자인 대상”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대본의 텍스트 뒤에 숨은 연극 말고 몸을 전면에 내세운 연극이 세계적 추세”라고 덧붙였다.

이는 오늘날 드라마투르그(dramaturg·극작술 연구자)의 분화 과정과 비슷하다. 창작부터 제작, 캐스팅, 리허설, 공연 후 평가까지 관여하는 드라마투르그의 일은 과거 연출이나 프로듀서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전문성이 강조되며 각각 나뉘게 됐다. 국내 첫 드라마투르그는 1999년 ‘파우스트’의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다. 사례비도 없었고 팸플릿에서 이름조차 빠졌다.

움직임 감독의 역할은 아직 부수적이다. ‘있으면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따로 비용을 지불할 여력은 없다. 국·공립극단이나 대형극 또는 신체극 중심의 극단에서만 일을 맡겼다. 김, 이 감독은 “‘이 장면만 봐 달라’거나 무료로 품앗이하듯 해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지만 연출과 협력하는 부분이 점차 늘고 있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남 감독은 “몸 잘 쓰는 한국 배우가 많다. 움직임 감독의 역할은 배우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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