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간 ‘마이웨이’ 걸었던 트럼프, 막판 악재 쓰나미에 결국 ‘철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8일 0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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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변은 없었다. ‘정치 이단아’의 예측불허 정치도 위기를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경합주에서 맹렬한 유세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울어진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선거 막판에 터져 나온 악재들은 물론 그의 편 가르기 정치와 좌충우돌식 국정운영 과정에서 심해진 사회 분열과 혼란의 대가는 컸다. 4년 간 쌓여온 미국인들의 실망감과 불안감은 예상보다 센 강도로 ‘트럼프 심판론’에 힘을 실었다.

●4년 간의 좌충우돌 ‘마이웨이’
미국 정치역사에서 트럼프 대통령만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4년 내내 워싱턴 정가를 흔들었던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2016년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를 꺾은 그는 취임 초기부터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를 앞세운 대내외 정책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종 보호무역주의 정책과 중국을 상대로 한 ‘관세 폭탄’으로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었다. 다자주의 질서를 무시하며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형사재판소(ICC) 같은 국제기구를 무력화하는데 집중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이란 핵협정(JCPO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체결했던 주요 국제협약도 잇따라 탈퇴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동서명을 거부하며 국제사회에서 ‘나홀로’를 자처했다.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주둔 미군을 속속 감축 혹은 철군시킨 데 이어 올해는 유럽의 핵심 동맹국인 독일 주둔미군의 감축까지 강행했다.

국내적으로는 불법이민자 유입을 차단하겠다며 남부 국경지대 장벽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야당과 거세게 충돌했다. 예산 확보 문제를 놓고 트럼프 행정부와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면서 최장기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35일)가 벌어지기도 했다.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전국민의료보험은 사실상 폐지했다. 백악과 내 정실주의와 보복 인사, 참모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독불장군식 의사결정과 변덕스런 정책 추진 과정도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를 트위터로 직접 발신하는 그의 대국민 소통 방식은 혼란을 부추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충성심을 보이지 않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신공격과 막말, 야당과 언론 비난과 함께 정책성과를 과시하는 ‘폭풍 트윗’을 쏟아냈다.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요 언론사들이 대통령의 발언 진위를 따지기 위해 잇따라 ‘팩트 체커’를 가동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사회 분열과 양극화 현상을 보여주는 각종 수치들은 악화됐다.

●망가진 국정운영에 막판 악재 쓰나미까지
그의 재선 캠페인은 한마디로 ‘악재와의 전쟁’으로 정리된다. 그는 재선 논의를 시작하던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에 탄핵됐다. 미 정치사상 탄핵당한 세 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올해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시위에 연방군 투입까지 불사한 강경 진압은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의 비판까지 불러일으켰다.

올해 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악재 중에서도 최대 폭탄이었다. 최대 성과로 앞세워왔던 미국 증시는 폭락했고 실업률이 치솟았고, 사망자(22만 명)와 확진자(800만 명) 수가 급증하면서 언론의 십자포화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선거를 불과 한 달 여 남겨놓은 시점에 본인이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치명타였다. 트럼프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치던 전문가들조차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쪽에 베팅하기 시작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선거 자금 모금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병원에 입원한 지 나흘 만에 퇴원한 그는 확진 판정 열흘 뒤부터 곧바로 대선유세를 재개했다. ‘코로나19를 이겨낸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연출하며 경합주만 하루에 두 서너 곳씩 방문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미 그에게서 등을 돌린 유권자들의 선택은 냉정했다. 결국 철퇴를 맞은 그는 역대 6번째 미국의 단임 대통령으로 남으며 백악관에서 나오게 됐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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