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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벼랑 끝까지 밀려나 본 적 있나요?”…왜 ‘증발자들’에 주목했나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
입력 2020-11-02 11:17업데이트 2020-11-0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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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맥…‘증발’ 시리즈 취재 기자를 만나다

《‘취맥(취재 후 맥주 한잔)’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기사를 취재한 기자와 함께 취재 관련 뒷이야기를 듣는 코너입니다. 이번 화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증발’ 시리즈를 취재한 이호재 기자를 초대했습니다. 증발자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독자들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제작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Q.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이호재 기자입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동아일보가 100주년을 맞아서 출범시킨 팀입니다. 깊이 있는 취재와 새로운 보도 방식을 통해 가지고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콘텐츠를 만드는 팀입니다.

Q. 기획 시리즈명이 특이했습니다. ‘증발자’였는데…

국어사전에 증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이 사라진다는 뜻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쓰여있어요.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왜 증발자들에게 주목했나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말을 해야 된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실제로 사라지고 싶다고 많이 느끼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과연 그런 기분을 느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실제로 그분들이 사라지진 않았을까? 이런 의문에서 주목했습니다.

Q. 방대한 취재였습니다.


4개월 정도 시간이 걸렸어요. 1회에서 4회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했는데 1회 같은 경우에는 대법원 홈페이지에 실종선고자의 선고문들이 게시가 돼 있거든요. 그 자료를 바탕으로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대법원 홈페이지에 한 6000여 건 정도 올라와 있고요. 그 중 실제로 실종된 지 10년 이내인 분들을 추려서 그 226명을 중점적으로 접촉해서 취재를 했습니다. 1회 같은 경우에는 증발했다가 돌아온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72년생 남자분의 이야기인데 1972생들의 대표적인 삶의 고난이라던가 그분들의 생각을 담았다고 생각해요. 2회는 증발자의 도시라는 테마로 서울 용산구에 있는 미래고시텔을 취재했습니다. 1회가 인물에 맞췄다면 2회는 공간에 맞춰서 우리 곁에도 이런 분들이 살고 있다. 이런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고요. 3회에서는 증발을 돕는 자와 증발한 자를 쫓는 자에게 접근해 그분들이 실질적으로 사라지는 현상들을 짚었습니다. 4회에서는 남겨진 자들의 슬픔이라고 해서 증발한 아들을 둔 부모님들 만났는데요. 한쪽만 보여 주지 않고 다른 쪽 면도 보여줘서 이 현상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1회 주인공으로 문 씨를 택한 이유는?


1972년생에 태어났다는 게 약간 작위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분의 사연을 들었을 때 한국 사회의 많은 굴곡들을 함께 겪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이 스물다섯 살 때 1997년 IMF를 겪었고요. 30대 후반에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거든요. 그 과정에서 또래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었을 거예요. 같은 고통을 겪으며 같은 고민을 했다는 부분에서 증발하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분들이 할만한 분들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Q. 1회 반응이 컸어요.

‘72년생 문모 씨’라는 캐릭터가 가져오는 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보도 방식에서도 내러티브 보도를 했는데요. 단순히 사실만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분이 왜 그런 선택을 내렸는지에 대한 감정 전달을 하려고 1인칭 시점도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이라고 평가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물론 형식만 따지자면 소설적 형식을 취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소설적 형식 내에는 기자들이 강조하는 팩트가 들어 있습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히어로콘텐츠팀이 도전하는 형식의 변화에 맞췄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Q. 문 씨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처음 연락이 된 건 문 씨의 누나입니다. 누나부터 먼저 취재가 됐고요. 누님을 설득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한 달 정도 걸렸던 거 같아요. 원래 누님 얘기만 들었는데 취재기자의 입장에서는 누님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거든요. 당사자를 만나야지 사실 확인이 되고 좀 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문 씨를 설득해서 만났죠.

Q. 누님이 취재에 응하신 이유는?

동생이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에서 도와주신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기사에 등장하는 검사, 법률구조공단 등 많은 분들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고 판단하신 거 같아요.

Q. 증발자들이 증발을 하는 공통적인 이유가 있나요?


많은 경우 경제적 이유라고 하더라고요. 경제적 문제가 첫 번째 이유고 그 이후에 사회·가족적인 안전망이 있느냐가 중요해요. 안전망이 없는 분들이 증발을 한다고 합니다. 안전망이 튼튼한 분들은 가족이나 사회나 이웃분들이 도와주셔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일을 다시 하는데 안전망이 없는 분들은 경제적 위기가 왔을 때 증발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Q. 그렇다고 해도 모든 걸 포기하고 자취를 감추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같이 보통 삶을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모든 걸 잃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건강도 잃고, 사회적인 관계도 잃고요. 꿈조차도 없죠. 모든 걸 잃으면서 그분들이 오직 지키는 건 자존감. 왜냐하면 새로 들어간 삶에서는 이 사람이 과거에 뭔 일을 했는지 실패를 했는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다른 이의 시선이 두려워서 증발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Q. 증발자들은 새 삶에 만족하시나요?

만족한다기보다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끔찍하고 무서우니까 현재의 삶을 계속 살고 싶어 하죠.

Q. 증발자들이 돌아오는 것도 의외였습니다. 문 씨는 계기가 있었나요?

물론 다들 겉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시지만 실제로 가족을 만났을 때 행동방식은 좀 다를 수도 있거든요. 문 씨도 누나를 보고 나서 마음이 변했고요. 누나가 본인을 그리워했고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낀 다음에 다시 사회로 복귀하려는 노력을 지금 하고 있으니까요. 그 과정을 보면 마음 한편에는 기존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거 같아요.

Q. 증발하기 전 사회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나요?

개별적 상황마다 다르죠. 예를 들어 빚이 많은 분 같은 경우에는 개인 파산제도라던가 회생 제도를 선택할 수 있겠죠. 산재를 당했다면 산업재해 보상청구를 하는 등 방법들이 있을 거에요. 제 개인적으로는 현재 제도적 미비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도는 스스로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증발자들이 그런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힘이 좀 부족한 거는 맞는데 제도보다는 실질적으로 가족이나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Q. 문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최근에도 통화를 한번 했는데 핸드폰도 개통하셨고요. 누님과도 교류를 계속하시더라고요.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아이들한테도 이제 연락을 해서 조금씩 교류를 시작하면서 가족과 다시 잘 지내보려는 노력을 하고 계십니다. 무척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기사를 인터넷으로 본 건 아니고 기사를 보신 누님이 전해주신 이야기를 들으셨다고요. 댓글에도 응원하는 메시지가 있으니까 그걸 보고서 본인도 좀 힘을 얻었다,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Q. 1회 기사에 달린 댓글만 2000건이 넘었습니다. 댓글에 의문 제기한 독자들이 많았는데,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댓글 1] 이혼 후 행동이 이해가 안 갑니다. 왜 자식들은 노모한테 떠맡기고 단칸방을 얻어 혼자 살고, 중국집 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노가다를 하나요?

문 씨가 중국집을 운영했는데 어떤 특별한 기술이 있어서 중국 음식을 만드시거나 이런 분은 아니고 주방장은 따로 있었어요. 문 씨는 포장이나 계산을 하셨죠. 원래 부부가 같이 운영하던 건데 이혼 후에는 혼자 중국집을 운영하기 힘드셨고요. 그래서 중국집 그만두고 일할 게 뭐가 있나 하고 생각하다가 좀 접근하기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인 공사장으로 나가신 거고요. 아이들을 맡긴 건 본인이 그렇게 일을 하러 나가다 보니까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잖아요. 아이들이 미성년자인 상태에서 이혼했기 때문에 어머니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댓글 2] 반지하 방은 계속 비어 있었나요? 월세도 안내고 자가도 아닌데 말이 되나요?

실질적인 소유는 문모 씨 누나의 자녀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분이 전세방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어요. 취재 차 한번 방문을 했거든요. 굉장히 열악한 곳입니다. 제가 방문하기 3일 전에 장마가 크게 났거든요. 반지하 방이 침수가 돼서 감전을 당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손을 좀 떨고 계셨어요. 감전된 상태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죠. 방에 불도 없고 쓰러져가는 집이라고 봐서 누님은 동생분이 언젠간 돌아올 수도 있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는 생각하에 그 집을 놔두기로 했고요.

[댓글 3]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 시키는 기사 아닌가요?

특수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독자분들마다 생각이 다르시더라고요. 그런 환경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분들은 나도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주시는 거 같고요. 그렇지 않은 분들은 특별한 상황이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취재를 하면서 이 기사 자체가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이야기로 읽혔으면 합니다.

[댓글 4] 증발자를 도운 검사를 띄우는 기사 아닌가요? 검찰에서 받아 쓴 기사 아닌가요?

접촉한 순서를 말씀드리면 문 씨의 누나, 그다음에 문 씨, 마지막에 검사를 접촉했습니다. 문 씨의 누님이 문씨가 돌아온 과정에서 검사님의 노력이 많이 있었다고 말씀을 해 주셔서 저희가 그 과정에서 취재를 했고요. 기자로서는 문 씨, 문 씨 누님의 말씀을 크로스 체크 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후에 검사를 접촉해 만났습니다.

검사가 덕을 볼만한 기사 내용은 아닌 거 같습니다. 본인이 사명감이 강하신 분 같아요. 서류를 보다가 발견했고 그 다음에 찾아내셨다고 합니다. 검사가 죄를 처분하는 것뿐 아니라 당사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검사의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민법의 실종선고 부분에 실종선고의 취소는 검사도 할 수 있다고 명시가 되어 있거든요. 그 문구를 본 검사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해석하신 거죠.

[댓글 5] 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나요? 해결책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죠?

처음에 히어로콘텐츠팀에서 논의했던 것 중 하나가 현상을 제대로 보여 주지 않고 대안만 제시하는데 급급한 면이 언론의 문제점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대안보다는 현상을 보여 주는 거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현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몫이 언론에도 있지만 독자, 국회, 기관에도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저희도 어떤 대안을 제시할 거냐 , 이 복지망을 어떻게 채울 거냐에 대해서는 향후에 보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으나 일단 현상 자체를 잘 보여주고 그 문제를 인식하는 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보도했습니다.

Q. 취재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든 기사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취재를 하면서 단순히 어렵다기보다는 정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취재 난이도가 높다기보다는 취재에 대한 정성도가 높다 이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취재하면서 어땠나요?

죄책감이 많이 들었어요. 저도 그렇게 잘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힘든 상황에 처한 분을 만나고 난 뒤에는 내가 너무 호화스러운 삶을 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하나는 나 자체가 이기적이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분명 이런 분들을 접할 기회들이 있었을 텐데 사실 그런 행동을 못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부모님이나 가족들한테 감사한 것도 있죠. 제가 그런 선택을 내리지 않게 잡아 줄 수 있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도 들게 하는 취재였던 것 같습니다

Q. 취재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문 씨가 갑자기 우신 적이 있어요.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엉엉 우시는데. 그전까지는 저는 그분이 돌아오고 나서도 아직 삶에 대한 의지가 그렇게 크진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제가 취재하다가 어느 순간 또 증발하지 않을까 고민도 했었는데 그동안 불효를 했다고 스스로 얘기를 하시면서 우시는데 그때 좀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증발을 막을 수 있게 도울 방법이 있을까요?

첫 걸음은 공감이랑 응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도도 분명 필요하겠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 한 마디 따뜻한 말을 건네고 위로해 주고 그분들이 그런 상황을 겪는 거에 대해서 공감해 주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지금 증발하고 싶은 분들께 한 마디 한다면?

스스로 도움을 청하려는 노력을 조금 더 해보시라고 할 거 같아요. 도움을 스스로 요청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정서상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혼자 겪어내야 된다, 이겨 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특히 성인의 경우에는 친구나 이웃,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그러기보다는 커피 한 잔을 하든 술 한 잔을 하든 주위 사람들과 그런 시간을 가지면서 고민을 토로하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디지털뉴스팀

<‘증발’ 기사 리스트>


[1화] 증발을 택하다: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살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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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증발해 산다: 증발자들의 도시, 미래 고시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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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증발을 팝니다: 은밀하게 꿈틀대는 증발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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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증발에 운다: 그렇게 부모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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