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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주지 스님이 말하는 제주 남선사에 ‘한글 주련’ 가득한 까닭…

입력 2020-10-07 15:52업데이트 2020-10-0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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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남선사 다실(茶室) 춘다원의 한글 현판과 주련. 남선사 제공
제557회 한글날(9일)을 맞아 제주 서귀포시의 불교 사찰 ‘남선사’가 대웅전을 비롯한 법당 현판과 주련(기둥에 붙이는 세로글씨)을 한글로 내걸어 화제다. 2012년에 창건된 남선사는 창건 당시부터 법당에 한글 현판을 붙였다. 최근에는 3개의 건축물 기둥에 총 13개의 한글 주련을 내걸었다. 한국 사찰에서 한글 현판과 한글 주련을 동시에 쓴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제주 남선사 주지 도정 스님이 다실로 쓰는 춘다원 앞에 서 있다. 춘다원은 한글 현판과 한글 주련 2개가 걸려있다. 도정 스님 제공
남선사가 법당 건축물에 한글을 활용한 것은 주지인 도정 스님의 ‘쉬운 불교’에 대한 소신에서 비롯됐다. 이 사찰을 세운 도정 스님은 “한국 불교가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알리고,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당 현판과 주련에 한글 사용을 실천한 이유다. 한문에 능통한 사람도 한자로 흘려 쓴 현판과 주련을 이해하기 힘들다. 또 한자 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는 한자로 된 사찰 이름을 읽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한글을 활용해 불교의 대중화를 이루자는 취지다.

‘쉬운 불교’에 대한 생각은 한글 주련에 명확히 나타난다. 보통 한국 사찰의 주련은 경전과 오도송(선승의 깨달음을 나타낸 시)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남선사의 주련은 법구경 6개 일반 서적에서 따왔다. 이들 서적의 문장은 불교와 연관이 있거나 이해하기 쉽다. ‘마음을 열고 나누는 대화는 부처님의 고귀한 선물’ ‘깨닫지 못해도 진리의 한 자락을 접한 것만으로도 기쁘다’ ‘사람에게서 맑음과 향기로움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는 식이다.
제주 서귀포시 남선사 향적전. 대웅전인 향적전에는 한글 현판과 법구경에서 따온 문구를 해석한 한글 주련 6개가 붙어있다. 남선사 제공

경전에서 따온 주련들도 한자 문장을 그대로 한글로 옮긴 게 아니라 알기 쉽게 해석한 것이라 눈길을 끈다. 대웅전인 향적전 주련에는 법구경 구절인 ‘無病最利(무병최리) 知足最富(지족최부) 厚爲最友(후위최우) 泥源最樂(이원최락)’을 해석한 ‘세상에 병 없는 것이 가장 큰 은혜요. 만족할 줄 아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네. 친구 중에 제일은 믿음이란 벗이요. 즐거움의 제일은 고요한 열반이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도정스님은 주련을 직접 제작하면서 “조선시대 신미대사께서 부처님의 말씀을 쉽게 배워 익힐 수 있도록 석보상절을 지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꼭 불경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일상생활에 맑음과 향기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네스코는 1997년 한글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1987년부터 ‘세종대왕상’을 제정해 인류의 문맹률을 떨어뜨리는데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상을 주는 것도 한글이 가진 우수성을 인정한데서 비롯된 만큼 불교도 어려운 이미지를 벗기 위해 한글을 적극 활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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