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10대 사망사고’로 외교갈등 빚은 美외교관 부인, 1년 만에 재판 받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0일 1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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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샘프턴셔에서 미국 외교관 부인이 몰던 차량에 치여 사망한 10대 영국인 소년의 부모가 1년여 동안의 투쟁 끝에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미 정부는 외교관 면책특권을 들어 사고 직후 귀국한 가해 여성의 영국 소환 요청을 거부해 외교 갈등을 빚어 왔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영국에서 근무하던 미 외교관의 부인 사쿨라스 씨(43)의 차량에 치여 19살 나이에 숨진 해리 던 군의 부모가 9일(현지 시간) 사쿨라스 씨를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WP는 같은 날 유족이 런던 검찰 측과 만나 형사고소 방안도 검토했다고 전했다. 사쿨라스 씨는 영국 노샘프턴셔 미 공군기지 인근 도로에서 남편의 차로 역주행을 하다가 오토바이를 몰던 해리 군과 충돌했고, 해리 군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사건 발생 이후 외교관 면책특권은 논쟁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쿨라스 씨는 영국에 있으라는 경찰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첫 경찰 조사 후 곧바로 미국으로 도주했다. 그해 12월 영국 경찰이 소환 요청을 했지만 미 국무부에 의해 거절됐고 지금까지 사쿨라스 씨는 면책특권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에 해리 군의 부모는 직접 미국으로 가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소송을 낸 것이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포함한 양국 고위급 관료들이 나서서 타협점을 찾으려 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유족은 지난해 10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다. 당시 해리 군의 부친 팀 던 씨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찍기용 만남이었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존슨 총리 역시 “외교 면책특권을 이런 목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 사쿨라스는 영국으로 돌아와 이 나라의 법 절차에 따르라”고 촉구했다. 결국 올해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도미닉 랍 영국 외무국제개발부 장관이 외교 면책특권 규정을 개정하기로 합의했지만, 아직까진 해리 군 사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진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 내 재판이 진행되더라도 피해 가족 측에 불리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사건 발생지가 영국인만큼 미국 법정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송이 기각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유족 측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만 있다면 목격자들과 함께 미국에 동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해리 군의 모친은 8월 WP에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의 국적과 상관 없이 정의는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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