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고깃집 사장님의 반전…태풍 속 빛난 ‘민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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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9월 7일 14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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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마이삭 내습 당시 소방관과 의용소방대원들이 쓰러진 간판을 치우고 있다.(제주소방안전본부 제공) /© 뉴스1
태풍 마이삭 내습 당시 소방관과 의용소방대원들이 쓰러진 간판을 치우고 있다.(제주소방안전본부 제공) /© 뉴스1
‘평소에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가 위기의 순간 영웅이 된다.’

슈퍼히어로 영화 줄거리가 아니다. ‘민간 119’라 불리는 의용소방대원들 얘기다.

8월말 9월초 잇단 태풍 내습에도 제주에서 인명피해가 없고 각종 피해 현장의 수습이 발 빨랐던 배경에는 이들 의용소방대원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7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의용소방대는 ‘의용소방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라 제주를 포함해 전국 각 지자체에 설치돼 있다.

제주에는 현재 제주소방서, 서귀포소방서, 동부소방서, 서부소방서 4개 소방서에 71개대 2130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태풍이나 화재 등 각종 재난 상황이 벌어지면 소방관 업무 보조와 피해 복구 등에 투입된다.

의용소방대원들은 지역 사정과 지리에 밝아 소방관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피해 현장을 살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제주 의용소방대는 지난해 제32회 전국 소방기술경연대회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을만큼 소방관 못지않은 체력과 정신력을 갖췄다.

생업과 가족조차 돌보지 못하고 태풍 현장에 투입된 이들에게 시간당 1만원 수준의 수당이 전부다.

민간인 신분이다보니 직업과 사연도 다양하다.

현상호 제주소방서 의용소방대연합회장은 건설회사와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지인의 권유로 의용소방대가 무슨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고 시작했다는 그는 이제 16년차의 베테랑이 됐다.

현 회장은 “불은 소방관이 끄지만 뒷정리는 의용소방대원들의 몫”이라며 “태풍 후 깨끗해진 도로와 현장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회사에서 눈치가 보여 출동을 못했다며 아쉽고 미안해하는 대원들도 있다”며 “가족들도 현장에 간다고 하면 조심히 갖다오라고 걱정하면서도 응원해줘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박휘근 대원은 고깃집 사장님이다.

제주시 연동에서 고깃집을 하는 박 대원은 한라산 쓰레기 줍기 등의 봉사활동을 하다가 1년 전부터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박 대원 가족은 아내와 딸 셋 모두 봉사활동을 하는 ‘봉사 패밀리’이기도 하다.

박 대원은 “재난 현장에서 의용소방대원들이 직접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일까지 하는건 아니지만 소방관들이 인명구조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며 “소방관들이 ‘고맙다’고 할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의용소방대원들은 태풍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방역 등 다양한 현장을 누빈다.

공공시설 방역소독은 물론이고 올해 상반기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의용소방대원 299명이 도내 약국에 출동해 대기 번호표를 나눠주고 마스크 배부를 도왔다.

코로나 여파로 혈액 수급량이 모자란다는 얘기를 듣고 헌혈 릴레이 나눔 행사에도 동참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왔던 현장에는 늘 의용소방대원들이 있었던 것이다.

증가하는 외국인 거주민들을 위해 의용소방대도 ‘국제화’하고 있다.

제주 의용소방대원들 중에는 중국, 일본,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등 40여명의 다문화 대원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통역과 소방안전교육 등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지난해 제주해상에서 침몰한 대성호 화재사고 당시 타지에서 온 베트남 선원 실종자 가족의 통역지원을 하기도 했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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