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도로 주변은 쓰레기 천지… ‘쓰레기 안 버리기 캠페인’ 절실

임재영 기자 입력 2020-08-24 03:00수정 2020-08-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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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본 한라산’〈7〉
한라산 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해 자생적으로 모인 봉사단체인 ‘클린 1131 프로젝트’ 회원들이 5·16도로 주변과 숲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쓰레기 수거 활동을 하고 있다. 한라산 숲 보호를 위해 나섰지만 회원들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교통사고 잔해나 생활쓰레기, 차량에서 버린 쓰레기가 수도 없이 나온다. 클린1131프로젝트 제공
16일 오전 8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5·16도로 구간인 논고교. 한라산국립공원 지역인 논고교 주변 숲길에 간편한 등산복과 트레일러닝(산길, 숲길을 달리는 스포츠) 차림의 자원봉사자 5명이 모였다. 80L짜리 적색마대를 3, 4개씩 들고 도로변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도로변 숲은 쓰레기 천지였다. 플라스틱 컵과 음식물 포장용 비닐, 종이, 페트병, 술병 등이 널려 있었다. 차량에서 버린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뿐 아니라 전기장판이나 이불, 서류가방 등 생활형 쓰레기도 넘쳐났다. 계곡 근처에서는 차량 타이어와 깨진 범퍼도 나왔다. 도로 시설물을 보수하고 남은 잔해와 폐 건축자재 등도 보였다.

● 자원봉사자들 매주 나서 쓰레기 줍기

쓰레기가 계속 나오면서 50m를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한 명이 마대 3개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자원봉사자 보호 장비는 손에 낀 목장갑이 유일했다. 뱀이나 벌 등 야생생물의 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도로변 숲속을 헤집고 계곡을 오르내리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청미래덩굴 가시 등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쓰레기가 담긴 마대를 들고서 오르내리려면 웬만한 체력으로 버티기 힘들 정도. 마대는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지원을 받는다. 쓰레기를 모아둔 장소를 알려주면 제주도 관련 부서에서 수거해간다.

이날 쓰레기 수거에 나선 이들은 ‘클린1131 프로젝트’로 불리는 자생 봉사단체 회원들이다.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5·16도로가 ‘지방도 1131호선’이란 점에 착안해 모임 이름을 정했다. 모바일메신저로 정보를 나누면서 매주 일요일(우천 시 토요일) 오전 8시부터 봉사 활동을 한다.

서귀포시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빈 씨(34·여)가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승용차를 몰고 갈 때는 몰랐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숲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양이 아니어서 지인 4명과 함께 4월 26일 첫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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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도 없이 주워 담다 보니 2시간 만에 마대 34개를 꽉 채웠다. 이 씨는 “올해 5·16도로 쓰레기를 치우고 내년에는 한라산 횡단도로 중 하나인 1100도로에서 활동하려고 했는데 쓰레기가 너무 많은 탓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모임은 회당 2명에서 10명 정도가 쓰레기 줍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도민과 이주민, 외국인, 관광객 등으로 다양하다. 이 씨는 “치워야 할 쓰레기가 워낙 많아 제주도나 큰 단체에서 수거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럴 여건이 아니어서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며 “느린 걸음이라도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무한한 혜택을 주고 있는 한라산에 대한 도리라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임 외에 한라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대표적인 자원봉사 단체가 ‘한라산 지킴이’다. 이 단체는 지난해 법인 설립까지 마쳤다. 2014년 1기가 출범해서 매월 첫째 주 일요일 한라산 곳곳을 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활동을 하지 못하다 6월에야 재개했다. 한라산 지킴이는 한라산 어승생 3거리에서 고지대 방향으로 도로변 청소를 하면서 2.5t 트럭 5대분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 비닐봉지 등 완전히 썩는 데 400년 걸려

한라산 쓰레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60, 70년대 중고교생들이 호연지기를 기른다며 산행을 하고 일반인 등산도 급증했다. 당시는 쓰레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지 않았다. 심지어 한라산 최정상인 백록담 분화구에서 숙식을 하거나 철쭉제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1977년 자연보호운동이 전국적으로 진행되며 변화를 보이기 시작됐다. 자연보호단체가 속속 결성됐고 산이나 강, 하천에서 쓰레기를 줍는 행사가 활발했다. 당시 쓰레기 줍기는 자연보호운동의 상징처럼 인식됐다. 쓰레기 줍기는 ‘쓰레기 안 버리기 운동’으로 바뀌었고, 이후 ‘되가져가기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자연보호운동 덕에 전국의 산이 어느 정도 깨끗해졌고 시민의식 또한 성숙해졌다. 하지만 쓰레기 투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문제는 산업화와 생활환경의 변화 등으로 썩는 데 오래 걸리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다. 완전히 썩는 데 알루미늄 캔은 80∼100년, 스티로폼은 50년 이상, 플라스틱 용기는 50∼80년이 걸린다. 비닐봉지는 무려 400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심각한 건 이들 쓰레기가 토양이나 동식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 한국 특산종인 동양달팽이가 정상적인 먹이 활동을 하지 못하고 종이 쓰레기를 먹는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 탐방로에 설치된 쓰레기통이 차고 넘치자 1988년 쓰레기통을 없애는 대신 5개 탐방로 입구에 쓰레기 수거함을 만들었다. 탐방객이 120만7000명에 이르던 2013년에는 쓰레기 147t이 수거됐다. 2014년 9월 쓰레기 수거함을 없애면서 쓰레기 되가져가기 운동을 펼치자 2015년 수거량은 33.8t으로 줄었다. 하지만 탐방객이 갖고 간 쓰레기를 국립공원 인근 지역이나 항만, 도심 등에 무단 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2016년 9월에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다시 설치했다. 분리수거함에서 나온 쓰레기는 2017년 52.7t, 2018년 34t, 2019년 40.8t 등으로 집계됐다.

눈에 보이는 곳에선 ‘쓰레기 안 버리기’가 어느 정도 정착됐지만 인적이 뜸한 곳에선 쓰레기 무단 투기가 여전하다. 탐방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페트병과 비닐봉지, 물휴지 등 쓰레기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한라산국립공원 도로변, 숲으로 가려진 곳에는 각종 쓰레기가 넘쳐난다.

한라산지킴이 관계자는 “지금도 ‘버리는 사람 따로, 줍는 사람 따로’인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교통사고 처리업체, 도로시설물 보수업체 등에 대해 쓰레기 수거 공지와 함께 차량 운전자와 탑승자의 쓰레기 투기를 막는 캠페인이나 입간판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한라산#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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