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무주택자 양산하는 문재인 부동산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2일 15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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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사표는 어떻게 됐을까. 어제도 청와대는 “추가 인사 여부는 대통령 인사권에 관한 사안”이라며 언급을 회피했지만 나는 유임이라고 본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얼떨결에 청주와 서울 반포 아파트까지 두 채를 다 팔고 무주택자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청와대 지근거리 실장 관사에 살고 있어 집 없는 설움이 실감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일자리까지 잃으면 관사를 비워줘야 한다. 반포 아파트 공동 소유자였던 노영민의 부인으로선 졸지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사슴 같은 눈을 지닌 문재인 대통령이 집도 절도 없어진 ‘정치적 동지’ 부부를 내보낼 수 있겠나.



● 내가 하면 투자요, 남이 하면 투기인 법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는 거, 안다. 작년 12·16부동산대책이 나온 날 노영민이 “수도권 내 2채 이상 집을 보유한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은 1채를 제외하고 6개월 안에 처분하라”고 권고한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하면 투자요, 남이 하면 투기인 법이다. 다주택자가 죄 투기꾼이 아닌 것처럼 청와대 다주택자가 죄 집을 판다고 집값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 안에 다주택자가 수두룩하면서 민간인 다주택자를 인민의 적(敵)처럼 몰아대는 게 코미디다. 그런데 이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인식과 정책을 고치는 게 아니라 청와대 다주택자들한테 집을 팔라고 종용했다.

6개월 뒤인 7월 2일 노영민은 보무도 당당하게 “이달 중 팔라”고 한 달을 연기해줬다. 그럼 노영민의 집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어쩌랴. 당초 집 팔라고 공개 경고를 했을 때 노영민 자신은 집 팔 생각이 없었던 것을(청주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은 날짜가 7월 1일이다. 집을 팔 작정이면 6개월 동안 왜 끼고 있었겠나).

● 인민재판 당하듯 강남 아파트 판 꼴
청와대는 당시 집을 팔아야 할 참모진이 강남 3구와 투기지역 또는 투기과열지구에 2채 이상을 가진 11명을 말한다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붙여줬다. 안타깝게도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와서 청주는 수도권도, 투기지역도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도 구차하다.

파는 수밖에 없다 싶어 노영민은 전날 청주 아파트를 내놨는데 설상가상, 반포 아파트를 팔겠다고 했다가 50분 뒤 “아니 청주”라고 바꾼 것으로 2일 발표되고 말았다. ‘똘똘한 아파트 한 채’를 지키려 지역구를 팔아먹는다는 비난이 인민재판 하듯 쏟아졌다.

결국 노영민은 인당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7일 김조원 민정수석 등 다주택자를 포함한 참모 5명과 일괄 사표를 제출하고도 모자라 8일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며 반포 아파트를 이달 중 처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노 실장이 7월 24일 반포 아파트를 매각했다”는 10일 청와대 발표가 앞뒤 안 맞긴 해도 어쨌든 노영민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성공을 위해 아파트 두 채를 다 팔고 말았다. 마치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몸을 판 것처럼.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신서래아파트 전경. 동아일보 DB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신서래아파트 전경. 동아일보 DB


● ‘버블 세븐’ 공격할 때 집 사길 잘했다
반포동 한신서래 45.72㎡ 아파트를 11억3000만 원 최고가에 매각해 8억5000만 원의 시세 차익을 올린 데 대해 청와대는 “15년 보유한 아파트임을 감안해 달라”고 했다. 집권세력 일각에서 부동산 시세차액은 불로소득이고, 징벌적 세금으로 회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에 청와대가 하는 소리일 거다. 동의한다. 고위공직자가 20평 아파트에 15년이나 산다는 것도 미담이라면 미담이다(주변 아파트처럼 재건축만 되면 20억 원대로 뛰겠지만).

다만 노영민이 그 아파트를 구입한 시점이 2006년 5월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청와대’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와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 안양시 평촌, 용인시 등 7개 지역을 ‘버블(거품) 세븐’이라고 규정하고 ‘부동산, 이제 생각을 바꿉시다’라는 청와대브리핑 10회 시리즈를 시작한 날이 2006년 5월 15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노영민은 2004년 고향인 청주 흥덕구에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1년 전 청주 아파트를 구입한 상태였다. 글로벌 호황기였던 노무현 정부 시절, 넘치는 유동성에 국토균형발전정책으로 보상금이 풀리면서 집값이 걷잡을 수 없이 뛰자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7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고 선언했다.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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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는 곧 자유… 전체주의가 소유권 침해한다
공급은 틀어막은 채 수요자만 죄인 취급하는 부동산 대책이 먹힐 리 없다. 재건축 규제 같은 공급억제책은 물론 징벌적 세금(거래세·보유세 강화), 거래규제 강화(투기지역 지정), 금융규제 강화(LTV, DTI 하향 조정) 등 수요억제 정책도 그때 다 써본 것들이다.

노무현 집권 3년간 30여 차례 대책을 쏟아내도 강남구 아파트는 57.4%나 치솟았고 열린우리당은 2006년 4월 재·보선에서 0 대 23으로 완패했다. 바로 그 무렵에 노영민은 반포 아파트를 보러 다니다 5월 버블 세븐 한복판에 한신서래아파트를 샀던 것이다. 심지어 5월 19일 노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 안정이 과연 되겠나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한탄을 하는데도 집권당 의원조차 대통령을 안 믿고 반포 아파트를 장만한 거다.

그게 사람 심리다. 노영민이 특별이 욕심 사납거나 사악해서가 아니다. 나는 노영민과 문재인 정부가 제발 겸허하게 사람을 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들 편만 인민(노동자계급 농민계급 소부르주아계급)이고 토지(요즘은 아파트)를 가진 지주계급은 인민의 적으로 몰아대지 말라는 얘기다.

그래도 노 대통령은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게 없다”는 말로 정책 잘못을 시인했다. 부동산에 적극 개입하다 못해 사적 소유권을 침해하는 국가가 전체주의다. 소유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인민재판처럼 몰리다 어쩔 수 없이 ‘집 없는 천사’가 된 노영민을 보며 생각을 바꿨으면 한다. 노영민이 살던 곳은 다수 국민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이고, 인민민주독재가 아니라면 그런 곳을 최대한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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