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라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 [우아한 청년 발언대]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입력 2020-08-02 13:27수정 2020-08-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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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6일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남북관계의 한 챕터가 또 끝이 났다. 우리 세금으로 지어진 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장면이 전 국민에게 보도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락사무소 폭파 장면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을까 걱정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파국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대북정책의 한계를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판문점 선언은 사실상 파기됐고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은 상당부분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결국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사표를 냈다. 남북관계 파탄에 대한 책임을 떠안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권에서는 김 장관이 너무나 소극적인 정책운영을 했다고 질타했다. 이는 2019년 조명균 장관 경질 때와 비슷한 패턴이다. 한반도 훈풍이 불던 지난 2년의 고무적인 환경을 연락사무소 폭파로 귀결시킨 것은 전임 조명균·김연철 장관의 관료적인 태도였다는 평가다. 북한에 더 다가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질책이다.

정부여당의 이러한 ‘오답노트’는 북한에 대한 더 적극적인 접근과 더 많은 관용을 요구하는 듯하다. 뒤이어 국정원장에는 김대중 정부에서 일한 박지원 전 의원, 통일부 장관에는 학생운동 출신의 이인영 의원이 임명됐다. 이 장관의 옛 동료였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외교안보특보가 됐다. 이들은 모두 북한과 인연이 닿아 있는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사실상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유화적 대북정책을 더욱 더 강화시키겠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그러나 과연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문제였을까. 지금의 남북관계 악화를 김연철 장관 개인에게서 찾는 것은 부적절하다. 굳이 따지자면 이번 정부의 대북정책 사령탑은 사실상 안보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통일부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여 온 것이 사실이다. 북한과의 대화가 단절될 때마다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이 “혹여 카운터파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닐까”가 아닌지 우려된다. 말하자면 북한에 대한 인신공양이다.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제사(祭祀)에 더 가까웠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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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박지원 원장에 대해서 풍부한 경륜과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강조했다. 북한과의 화해 무드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든 이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식석상에서 DJ의 길과 햇볕정책에 대한 계승 의지를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박 원장 기용의 핵심목표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꿈꾸는 “어게인 2000”일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강력한 시그널만 지속적으로 보내면 북한이 언젠가 ‘외투’를 벗을 것이라는 기대가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우선 이번 인사로 북한에 대한 우리의 레버리지를 너무 낮추지는 않았나 하는 우려가 있다. 북한은 이른바 ‘평화’의 지속에 대한 가격으로서 남한 안보라인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큰 보상을 요구해 받아가는 반면 남한은 그만큼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턱없이 높은 흥정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누군가 ‘한국 외교는 너무 투명하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변칙성이 없는 외교정책은 상대방에게 스스로를 헌납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평화가 한반도 정책의 핵심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다른 여러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밀당’을 포기한 대신 ‘순정’만을 택했고 이는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다. 이러한 ‘비대칭적 균형’이 진정한 평화인가를 차치하고서라도, 언제까지나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숙고해보아야 한다. 예컨대, 제2의 연락사무소 폭파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는 정부 스스로도 절대로 확언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햇볕정책을 너무 교조적으로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가 크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는 것 역시 확실히 상기해야 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팽창적 공세에 발맞추어 북한은 핵무장 방향으로 더 기울고 있다. 핵을 가진 김정은은 김여정과 역할분담을 하며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그에 적실한 외교정책을 펴야 마땅할 것이나, 현 상황에서는 대통령과 여당이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고전적 햇볕정책을 너무 신성시한 나머지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어쩌면 우리는 귀신에 홀린 듯이, 서낭당 주위를 몇 바퀴 째 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만 바꿔서는 본질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없다.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다. 사람이 아니라 정책방향을 현실에 맞게 다시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북정책은 뫼비우스의 띠를 따르는 듯 계속 반복되어 왔다. 보수정부 때는 아래쪽 띠를 따라서 하강국면을 거듭하다 파국을 피해 극적으로 회복되어 왔다면, 진보정부 때는 위쪽 띠를 따라서 관계가 개선되는 듯하다가 추락해 원점으로 떨어졌다. 한반도에서 우리가 물려받은 구조적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와도 어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현실감 없는 정책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분단이라는 덫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2000년의 오래된 정책으로는 2020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사회과학이다. 이에 대해서는 생전 ‘상인적 현실감각’을 중요하게 강조한 김대중 대통령 역시 동의할 것이다.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이제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북한은 매우 보수적인 국가다. 북한 정권의 제1목표는 정권유지이기 때문이다. 특성상 북한 정권의 목표가 북한의 국가안보와 밀접히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현재 국제구도를 최대한 유지하고 싶어 할 것이다. 주목되는 점은 이번 인사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다. 최근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이인영·임종석 두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많다”고 했다. 북한의 이런 논평은 매우 교묘하다. 우리 정부가 사안을 본질적으로 보고 대응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본질적인 것에 적절히 맞장구쳐주는 것으로 의도됐을 것이다. 이는 정부가 잘못된 대북정책을 펴는 데 대한 정(+)의 피드백(positive feedback)이 된다. 그리고 남한의 이런 실책이 지속될수록, 북한 정권은 지금과 같은 권력을 유지하기 용이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등하게 외교전을 펼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에이스 카드를 냉정하게 판단해 잘 활용해야 한다. 북한의 가장 약한 고리는 단연 경제다. 이는 남한이 북한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부분이다. 북한은 경제제재에 큰 고통과 타격을 입는다. 무엇보다도 외환 보유고 고갈이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다. 북한의 도발에 충격을 받았다면, 안으로는 칼을 갈아야 마땅하다. 인사(人事)라는 무의미한 ‘클럽 2’ 대신, 경제제재와 같은 ‘에이스’를 적극적으로 꺼내고 활용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급성적 군사도발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북한의 만성적 빈곤이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힘으로 운영되는 국제무대에서는 무기를 가진 쪽이 항상 우위를 가진다. 정말 안타깝게도 순정은 국가간의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잘 통하지 않는 방식이다. 물론 적극적 접근과 유화적 제스처도 어디까지는 매우 필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이제는 한민족이라는 감상보다는, 현실적인 정책으로 냉정하게 접근해야 마땅하다. 순정을 가장한 아웃카운트 헌납으로는 현상유지 그 이상의 결론을 만들어낼 수 없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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