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 개항 직후 대한제국의 모습 보여줘[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8일 20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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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채색 살라미나병’은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 제작한 대형 장식용 병으로 1888년 프랑스 마리 프랑수아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보낸 수교예물로 추정된다.
‘백자 채색 살라미나병’은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 제작한 대형 장식용 병으로 1888년 프랑스 마리 프랑수아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보낸 수교예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와 개화기에 궁궐에서 사용했던 도자기가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 고궁박물관은 28일부터 10월 4일까지 ‘신(新)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전시를 개최한다.

<프랑스 필리뷔트의 식기 세트>는 백자에 금색 선을 두르고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이화문을 장식했다.
<프랑스 필리뷔트의 식기 세트>는 백자에 금색 선을 두르고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이화문을 장식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1886년 당시 조선과 프랑스 수교를 기념해 프랑스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보낸 ‘살라미나 병’과 필리뷔트(Pillivuyt) 양식기 한 벌, ‘백자 색회 고사인물무늬 화병’ 등 그동안 한번도 공개된 적 없는 근대 서양식 도자기 40여 점이 처음으로 전시된다. 이를 포함해 프랑스·영국·독일·일본·중국에서 만들어진 서양식 도자기 등 400점의 소장 유물을 선보인다.

궁중에서 사용한 영국, 프랑스, 중국에서 들여온 식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궁중에서 사용한 영국, 프랑스, 중국에서 들여온 식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도자기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기능과 형식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도자기를 통해 당대 사회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는 개항 이후부터 대한제국 초기까지 격동하는 당시의 모습과 조선이 지향했던 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궁중 위생도기>근대기 서구 유럽에는 산업화에 따른 도시인구 증가에 따른 공중위생을 해결하기 위해 위생용 도자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도자제작소가 출현했다. 유럽에서 생산된 변기, 세면기, 타일과 같은 위생용품과 시설은 일본을 거쳐 조선에 보급되었다.
<궁중 위생도기>근대기 서구 유럽에는 산업화에 따른 도시인구 증가에 따른 공중위생을 해결하기 위해 위생용 도자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도자제작소가 출현했다. 유럽에서 생산된 변기, 세면기, 타일과 같은 위생용품과 시설은 일본을 거쳐 조선에 보급되었다.

개항 직후 조선은 서양식 건축물을 짓고 세계 각국의 도자기를 사용함으로써 근대국과임을 과시하고 이를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했다. 조선왕실에서 사용했던 서양식 도자기는 격변기 최전선에서 외교적 해법을 찾으려는 왕실의 노력을 오롯이 보여준다. ‘신(新)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는 대한제국이 처한 정치·외교·사회의 면면을 5부의 전시로 조명했다.

<궁중을 장식한 수입 화병> 19세기 말 조선이 서양식 건물을 짓고 세계적으로 유행한 대형 화병을 장식한 것은 근대적 취향과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궁중을 장식한 수입 화병> 19세기 말 조선이 서양식 건물을 짓고 세계적으로 유행한 대형 화병을 장식한 것은 근대적 취향과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1부 ‘조선후기 왕실의 도자 소비’에서는 용준(龍樽)과 모란무늬 청화백자, 정조초장지, 화협옹주묘 출토 명기 등 조선왕실 청화백자를 한곳에 모았다. 서양식 도자기를 본격적으로 감상하기에 앞서 500년간 이어진 왕실의 전통 도자기를 우선 감상하는 공간을 마련해 왕실 도자기의 소비 변화를 알아볼 수 있게 구성했다.

<홍색 오얏꽃무니 유리 등갓> 1887년 고종 24년 경복궁 후원의 건청궁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불을 밝혔다. 궁궐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전기 시설이 갖춰지면서 밤까지 활동 시간이 연장되어 왕실의 생활양식이 변화게 되었다.
<홍색 오얏꽃무니 유리 등갓> 1887년 고종 24년 경복궁 후원의 건청궁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불을 밝혔다. 궁궐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전기 시설이 갖춰지면서 밤까지 활동 시간이 연장되어 왕실의 생활양식이 변화게 되었다.

2부 ‘신(新)왕실도자 수용 배경’은 개항 이후 서양식 도자기가 왕실에 유입되었던 배경을 조선의 대내외적 변화를 통해 조망했다. 조선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근대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오얏꽃무늬 유리 전등갓’ 등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150여 점의 유리 등갓은 1887년 전기 도입 후 궁중 실내외에 설치된 것이다.

1888년 프랑스 마리 프랑수아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보낸 수교예물로 선물한 ‘백자 채색 살라미나병’
1888년 프랑스 마리 프랑수아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보낸 수교예물로 선물한 ‘백자 채색 살라미나병’

3부 ‘조선과 프랑스의 도자기 예물’은 1888년 조·불수호조약 체결 기념으로 프랑스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조선에 선물한 프랑스 세브르 도자제작소에서 만든 ‘백자 채색 살라미나’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예술적 자부심이 높은 프랑스는 자국을 대표하는 명품으로 세브르産(산) 도자기를 선택해서 보냈다. 고종은 답례로 12~13세기 고려청자 두 점과 속제 화분에 금칠한 나무를 세우고, 각종 보석으로 만든 꽃과 잎을 달아놓은 장식품, ‘반화(盤花)’ 한 쌍을 선물했다.

<서양식 연회에 사용된 궁중 식기> 개항이후 조선왕실은 세계와 소통하는 창구로서 크고작은 서양식 연회를 개최했다. 서양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 속해 있던 조선왕실은 서양의 식사 예절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서양식 연회에 사용된 궁중 식기> 개항이후 조선왕실은 세계와 소통하는 창구로서 크고작은 서양식 연회를 개최했다. 서양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 속해 있던 조선왕실은 서양의 식사 예절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4부 ‘서양식 연회와 양식기’에서는 조선왕실의 서양식 연회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개항 이후 조선은 서양식 연회를 개최해 각국 외교관들과 교류하고 국제정보를 입수하고자 했다. 창덕궁 대조전에 남아 있는 서양식 주방을 그대로 옮긴 구조에 ‘철제 제과틀’, ‘사모바르’ 등 각종 조리용 유물을 전시해 당대의 창덕궁 주방 속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홀로그램 형식으로 재현한 개화기 대한제국의 서양식 주방
홀로그램 형식으로 재현한 개화기 대한제국의 서양식 주방

일본 규슈 아리타의 고란샤에서 만든 ‘백자 색회 고사인물무늬 화병. 중앙에 창을 낸 두 중국의 죽립칠현을 표현했다.
일본 규슈 아리타의 고란샤에서 만든 ‘백자 색회 고사인물무늬 화병. 중앙에 창을 낸 두 중국의 죽립칠현을 표현했다.

5부 ‘궁중을 장식한 수입 화병’에서는 만국박람회를 통해 세계 자기 문화의 주류로 떠오른 자포니즘(Japonism) 화병과 중국 페라나칸(Peranakan) 법랑 화병을 전시한다. 조선이 서양식 건축을 짓고 세계적으로 유행한 대형 화병을 장식한 것은 근대적 취향과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일본 아리타·교토·나고야 지역에서 제작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한 서양 수출용 화병들이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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