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영석과의 약속 지켜 기뻐…1%의 가능성만 있으면 달린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5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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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210회 완주한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이 19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210회째를 완주하고 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이 19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210회째를 완주하고 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 14좌를 올랐던 고 박영석 대장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결코 포기하지 못 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1%라도 달릴 수 있다면 끝까지 달리겠습니다.”

산악인이자 마스터스마라토너인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72)은 19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를 210회째 완주했다. 공식 대회에서 달린 거리만 8860.95km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8848m의 1000배인 8848km를 넘겼다. 그는 “생전 박영석 대장과 한 약속을 지켜 기쁩니다. 박 대장이 하늘에서 축하해줬을 것이라고 믿습니다”며 “이젠 박 대장이 평소 말했던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실천할 겁니다”고 말했다.

2006년 초였다. 2005년 히말라야 14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 대장은 중국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횡단 등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동국대 산악회부터 박 대장의 후원자였던 이 전 이사장은 어떻게 응원할까 고민하다 ‘박 대장 인터넷 응원창’에 8848km를 달리며 응원겠다고 선언했다.

‘(박)영석아. 네가 다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8848m 고지를 오른다니 난 수평으로 8848km를 달리며 너를 응원할게.’

‘형님, 그 목표를 달성하는 날 피니시라인에서 기다리다 제가 업어 드리겠습니다.’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이 19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210회째를 완주한 뒤 함께 달린 동호회 회원들과 포즈를 취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이 19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210회째를 완주한 뒤 함께 달린 동호회 회원들과 포즈를 취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박 대장이 2011년 10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신 루트 개척에 나섰다 눈사태로 실종되는 바람에 이 전 이사장을 업어주겠다는 약속은 지키기 못했다. 하지만 박 대장의 아내 홍경희 씨는 이날 이 전 이사장의 레이스를 지켜보며 “(남편이 생전에) 완주 지점에서 업고 들어온다고 말씀하셨다는데, 그 약속을 못 지켜 대신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지만 하늘에서 남편이 좋아했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다”고 말했다.

박 대장이 1983년 동국대에 입학해 산악회에 가입하면서 이 전 이사장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동국산악회가 졸업생과 재학생의 끈끈한 우정을 이어 가고 있어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냈다. 이 전 이사장은 동국산악회 회장을 맡아 박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등정을 직접 후원하기도 했다. 그는 “학번 차이가 15년이라 함께 등정할 수는 없었지만 베이스캠프까지는 함께 가는 등 박 대장의 등반을 늘 응원했었다”고 말했다.

평소 조깅을 즐기던 이 전 이사장은 2003년 말 지인을 따라 마라톤 풀코스에 입문했다. “산을 같이 다니던 후배가 ‘형님 저 풀코스 완주했습니다’고 하기에 ‘그래? 나도 한번 달려볼까’하며 달리면서 마라톤에 빠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은 2003년 춘천마라톤에서 마라톤 풀코스에 입문해 이 대회만 17년 연속 완주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은 2003년 춘천마라톤에서 마라톤 풀코스에 입문해 이 대회만 17년 연속 완주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솔직히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 산을 자주 올랐기 때문에 도전정신과 체력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2003년 춘천마라톤 대회 참가신청을 하고 10km 대회에 출전하는 등 준비를 했다. 풀코스 완주를 하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산에 오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 전 이사장은 지난해 춘천마라톤을 17년 연속, 동아마라톤을 16년 연속 완주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동아마라톤 등 주요 대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요즘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 열리는 공원사랑마라톤에 출전하고 있다.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은 2004년 동아마라톤대회 풀코스에 출전하며 16년 연속 완주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은 2004년 동아마라톤대회 풀코스에 출전하며 16년 연속 완주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산과 마라톤, 이루는 과정은 다르지만 성취감을 준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산은 수직으로 오르고, 마라톤은 수평으로 달린다. 하지만 산 정상에 올랐을 때와 마라톤 결승선에 도달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똑같다”고 말했다.

이 전 이사장은 “영석이는 갔지만 내가 먼저 꺼낸 약속을 저버릴 순 없었다. 평소에도 풀코스를 계속 달리고 있었는데 인터넷 응원창에 내가 했던 약속을 기억한 친구가 다시 얘기하기에 더 열심히 달렸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게 쉽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영석이 때문에 내가 더 건강해진 것 같다. 70세를 넘겨서도 그 약속을 지키려 매일 달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라톤에 입문하며 1년에 풀코스를 2,3회 완주하던 그는 2011년부터 완주 횟수를 크게 늘렸다. 그해만 38회를 완주했다. “2011년 10월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 100회를 완주했다. 그런데 그 바로 2주 전에 박 대장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됐다. 안타까웠다. 그 때부터 더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집중했다.” 고관절 부상으로 잠시 쉬는 기간도 있었지만 박 대장과의 약속을 위해 그는 ‘105리의 고행’을 멈추지 않았다.

“솔직히 풀코스를 달리는 게 쉽지는 않다. 30km을 넘어서면 ‘내가 왜 이런 고행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런데 피니시라인만 통과하면 ‘다음 주는 어떤 마라톤대회에 나가지?’를 고민한다. 그게 마라톤이다. 영석이도 고산을 오르며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마라톤과 등산은 통한다.”

그는 30년 넘게 새벽에 달리기, 수영, 웨이트트레이닝을 번갈아 하며 몸을 관리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요즘은 평일 7~12km를 달리며 거의 매주말 풀코스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마라톤을 시작할 땐 풀코스를 3시간 30분대에 완주했지만 지금은 4시간30분에서 5시간 안쪽에 완주하고 있다. “나이를 먹으니 달리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그래도 목표가 있으니 달린다”고 했다.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왼쪽)이 생전 박영석 대장하고 함께 한 모습.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왼쪽)이 생전 박영석 대장하고 함께 한 모습.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이 전 이사장은 박 대장의 ‘1%의 가능성만 있다면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며 실천하고 있다. 모교 동국대에서 박 대장의 도전정신을 기리는 교양강좌를 하고 있는 그는 마라톤에서도 1%의 가능성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그는 “주위에서 ‘약속을 지켰으니 이젠 그만해라’라고 한다. 하지만 걸을 수 있으면 달릴 수도 있다. 영석이가 그랬듯 1%의 가능성이 있다면 달릴 것이다. 210회로 8848km를 넘겼지만 300회 완주를 향해 달리겠다. 300회를 넘기면 다시 또 다른 목표를 만들 것이다”며 활짝 웃었다.

“마라톤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보러 무릎을 위해 이제 그만 달리라고 한다. 안 뛰어본 사람들 얘기다. 아프면 달리지 못한다. 난 아직 멀쩡하다. 달리니 오히려 무릎이 더 강해졌다. 주변 근육도 단련돼 아무리 달려도 안 아프다.”

마라톤과 등산 뭐가 더 좋을까?

“솔직히 산을 오르는 게 더 좋다. 하지만 마라톤도 매력적이다. 산을 잘 오르면 하체가 강화돼 마라톤도 더 잘 즐길 수 있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산도 오르고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하겠다.”

한편 재단법인이었던 박영석탐험문화재단은 사단법인 박영석탐험문화진흥원으로 바뀌었고 이사장은 박 대장의 아내인 홍경희 씨가 맡게 됐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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