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안써도,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OK…갈 길 먼 ‘킥라니’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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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6월 22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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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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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의 한 주차장 앞.

대여한 공유 전동킥보드에 발을 올리자마자 주변 보행자들이 갑자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연습 삼아 아주 느린 속도로 주행했는데도 시민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심지어 불쾌한 표정으로 째려보는 이까지 있었다.

전동킥보드를 향한 냉랭한 반응은 요즘 도심을 지나다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대목이다. 여러 공유 전통킥보드 업체가 생겨나며 이제 전동킥보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된 지 오래. 하지만 그만큼 불쾌한 경험도 쌓여갔다. 조모 씨(54)는 “자전거보다 빠르게 달리는데 소리는 잘 안 들려 갑자기 나타나면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며 “최근엔 크고 작은 사고도 잦아 다투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고 했다.

‘킥라니.’

요즘 인터넷에선 전동킥보드를 고라니와 합친 신조어 킥라니라 부른다. 지방도로에서 순식간에 차도로 뛰어드는 고라니처럼, 아찔한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란 뜻이다. 최근 이런 문제점을 반영해 관련법 개정도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안전 확보를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많다.

● 전동킥보드 법 개정, 오히려 안전은 뒷전

전동킥보드는 인도를 휘젓는 게 가장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차도에서 운전해도 위험천만한 상황은 자주 벌어진다. 원래 법적으로 전동킥보드는 자전거도로나 자전거 통행이 허용된 혼용보도가 없는 경우엔 차도에서 운전해야 한다. 하지만 차량 운전자들은 전동킥보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이날 한 택시운전사는 차창까지 내리고 “왜 차도에서 타느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시민 김모 씨(40)도 “보행자 입장에선 차도로 가면 좋겠지만, 차도 위의 전동킥보드가 더 아슬아슬해 보이긴 한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이달 초 전동킥보드와 관련해 개정 법률을 공포했다. 도로교통법에 ‘개인형 이동장치(퍼스널 모빌리티·PM)’를 “최고속도 시속 25㎞ 미만, 총중량 30㎏ 미만인 원동기장치자전거”로 정의했다. PM의 통행방법도 기존 오토바이가 아닌 전기자전거에 준하는 수준으로 만들었다. 법률을 시행하는 12월 10일부터는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PM의 자전거도로 통행이 가능해지며 13세 이상 운전자라면 운전면허 없이도 운전할 수 있다.

하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다. 개정 법률이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춰 전동킥보드 등 PM으로 인한 사고 방지 대책이 부실하단 지적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PM이 가해 차종으로 분류된 교통사고 건수는 2017년 117건에서 2018년 225건, 2019년 447건으로 증가했다. 2년 만에 약 4배로 늘어난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안전 수칙은 오히려 후퇴한 측면도 있다. 헬멧 등 안전도구에 관한 규정이 그렇다. PM을 오토바이보다 자전거에 가까운 원동기로 취급해 헬멧 착용은 의무에서 권고 사항으로 완화됐다. 현행법은 자전거 운전자도 헬멧 착용을 권고하지만 오토바이와 달리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PM과 자전거의 운행 특성의 차이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운전자 연령대가 만 13세 이상으로 대폭 낮아진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동킥보드를 오토바이와 같은 기종으로 분류한 건 물론 과했다. 하지만 전기로 동력을 얻는 PM을 자전거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단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학생이 헬멧도 쓰지 않은 채 차도 위를 달리는 모습만 상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 전동킥보드에 맞는 기본법과 도로 정비 시급

교통안전 전문가들은 “전동킥보드 등 PM에 맞춘 규정을 바탕으로 기본법을 새로이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토바이나 자전거 등 기존 원동기 규정에 전동킥보드를 끼워 맞출 게 아니라 PM의 특성을 적절히 반영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단 뜻이다.

국토교통부도 현재 2021년 시행을 목표로 PM 기본법의 내용을 꾸리고 있다. 이제 착수한 단계라 아직 어떤 내용들이 법에 포함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통행방법 등 최소한의 안전 규정을 마련하고 현재 거의 관리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관련 산업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공유 전동킥보드는 주차와 관련한 규제조차 마련되지 않아 아무데나 널브러져있는 광경을 자주 마주한다. 최근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기존 자전거거치대에 전동킥보드도 주차하도록 정비하는 등 자체적인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PM기본법이 마련되면 보기도 안 좋고 보행도 불편한 이런 점까지 잘 챙겨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전동킥보드가 자전거도로로 대거 유입될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자전거도로망을 대폭 정비하는 게 급선무다. 국내 자전거도로는 원래도 교통선진국의 자전거 친화적인 도로와 비교하면 열악한 수준이다. 자전거도로가 없는 곳도 많을뿐더러, 중간에 끊겨서 하나로 연결된 ‘망’ 구성도 안돼 있다. 한 교통전문가는 “안 그래도 도심의 자전거도로는 사고취약지역이라 불리는데, 전동킥보드까지 늘어나면 현재 도로 사정으론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 내다봤다.

국토부는 PM과 관련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활발히 논의되던 시기인 3월에 “차도·보도와 구분되는 ‘제3의 도로’ 설계 지침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계획을 발표했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각종 PM들이 상용화되며 이들 원동기들이 통행할 도로 건설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PM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급증하며 이를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설계지침을 만들게 됐다”며 “상대적으로 바퀴가 작은 점 등 자전거와 구별되는 특성을 고려해 도로의 경사나 턱의 높이를 비롯한 세부 설계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라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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