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남북 긴장…北, 대남 전단 일부 이례적 공개하며 비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1일 21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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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시작된 남북 간 긴장상황이 북한의 대남전단 ‘맞불’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 노동신문은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 위에 담뱃재를 뿌린 대남전단 일부를 공개하면서 도발했고, 통일부는 거듭 ‘강한 유감’을 표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 문 대통령 사진에 담뱃재… 통일부 “대남전단 중단”
북한이 공개한 대남 비방 전단. 전단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다 잡수셨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공개한 대남 비방 전단. 전단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다 잡수셨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남북 간 험악한 설전의 시작은 북한이 20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대남삐라(전단)를 공개하면서부터다. 신문은 2면에 문 대통령의 얼굴 사진 위아래로 “다 잡수셨네… 북남합의서까지”라는 문구를 합성한 전단더미 위에 담배꽁초와 담뱃재, 머리카락 등을 뿌린 사진을 실었다.

조선중앙통신도 같은 날 “여직껏(여태껏) 해놓은 짓이 있으니 응당 되돌려 받아야 하며 한번 당해보아야 얼마나 기분이 더러운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대남전단 대량 살포 계획을 보도했다. 대량 인쇄된 전단 뭉치가 창고에 적재된 모습과 주민들이 마스크를 낀 채 인쇄하거나 정리하는 현장 사진도 공개했다. 앞서 17일 인민군 총참모부가 입장문을 통해 대적(對敵) 군사행동 계획 네 번째로 예고한 ‘인민들의 대규모 대적삐라 살포 투쟁’을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통일부는 20일 즉각 “남북 간 합의의 명백한 위반”이라며 대남 비방전단 살포 계획에 유감을 표명했다. 통일부는 “우리 정부와 경찰, 접경지역의 지자체가 협력하여 일체의 살포 행위가 원천 봉쇄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단속하고 있다”며 “북한도 더 이상의 상황 악화 조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도 20일 논평을 통해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저열한 내용이 담긴 전단 살포는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을 행태”라고 비판했다. 친여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북한을 비난하는 메시지가 속출했다. 한 누리꾼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왜 우리 문프(문 대통령)에게 난리냐”며 “우리 문프 얼굴에 낙서해 뿌릴 생각 마라”고 썼다.

북한은 하루 만에 “이미 다 깨어져 나간 북남관계를 놓고 전단 살포 계획을 변경할 의사는 전혀 없다”며 맞받아쳤다. 통일전선부 대변인은 21일 성명을 내고 “휴지장이 돼버린 합의에 대하여 남조선당국은 더 이상 논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난했다. 통일부는 이날 통전부 담화에 대해 “어제 발표한 입장에 변함없다”며 “북한도 남북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대남전단 살포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 대남전단 이례적 공개로 남북 악화 장기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각지에서는 대규모적인 대남 삐라(전단) 살포를 위한 준비 사업이 맹렬히 추진되고 있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각지에서는 대규모적인 대남 삐라(전단) 살포를 위한 준비 사업이 맹렬히 추진되고 있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노동신문이 대남전단 사진을 직접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을 직접 비난한 대남전단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파악됐다. 평양을 방문해 북한 주민들 앞에서 연설까지 했던 문 대통령을 조롱함으로써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통전부 대변인이 담화에서 “전체 인민의 의사에 따라 계획되고 있는 대남 보복 전단 살포 투쟁”이라고 밝힌 만큼 한국 적대시 기조는 당분간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대남전단을 언제쯤 살포할지는 미지수다. 총참모군이 대남 군사행동계획으로 밝힌 △금강산·개성공단 주둔군 재배치 △비무장지대 GP에 군대 주둔 △서남해상에 포병부대 증강 및 군사훈련 재개보다는 저강도 도발이지만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남북 합의 위반을 상징적으로 다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는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준이 통과되면 이러한 계획들이 동시다발로 진행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남주홍 경기대 석좌교수는 “북한도 대남선전이 전략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인민들의 증오심을 촉발해서 내부에서 김정은을 결사옹위하고자 하는 감정 표출로 보인다”며 “전달 살포를 둘러싼 갈등이 자칫 우발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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