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와 코로나[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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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매개체로 지목되는 박쥐는 몸에 200개 이상의 바이러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도 쉽사리 질병을 앓지 않는다. 수평 비행 속도가 시속 160km이고 수천 km를 날 수 있는 왕성한 활동으로 체온이 섭씨 40도까지 올라 바이러스를 제압할 만큼 면역체계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올 초 코로나가 세계 각국에서 확산되자 날씨가 따뜻해지면 코로나가 한풀 꺾일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던 것은 기후와 바이러스의 일반적인 관계도 있지만 박쥐의 이런 독특한 생리가 알려진 것도 한몫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월에 기온이 높아지면 코로나19가 없어질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북반구에서 통상 11월에 시작돼 이듬해 4월경이면 끝난다. 코로나19에 대해서도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코로나 전파는 2% 감소한다’ ‘평균기온이 5∼11도이고 상대습도가 낮을수록 많이 퍼졌다’는 등 코로나의 ‘계절성’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잇따랐다. 중국 중산대 연구팀은 ‘섭씨 8도의 법칙’도 발표했다. 전 세계 26개국 2만4000여 명의 확진자를 분석해 보니 평균기온 8.72도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첫 발생지 우한은 1월 최고기온이 8도로 ‘바이러스 냉장고’처럼 잘 보존하며 맹렬히 확산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폭염이 시작되면 코로나가 물러날 것이라는 기대는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나고 있다. 평균기온이 30도가 넘는 인도는 한 달 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하루 1만 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연일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하루 3000명 이상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비슷한 위도에서 동서축으로 확산되던 코로나19는 온도를 가리지 않고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러시아 등 남북축으로 퍼지는 형국이다. 확진자가 1000명 이상인 국가와 지역이 120여 곳이다. 온도의 영향을 기대했던 전문가들도 “바이러스 전파는 기온보다 다른 요인이 훨씬 많아 사람이 하기 나름”이라고 물러섰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무증상 감염, 숙주 밖에서 최장 72시간 생존, 완치자 재감염, 높은 치사율과 전파력 겸비 등 기존 바이러스의 생존 원리를 역행하는 특징을 잇달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온도와의 관계도 예측 불허라면 방역전쟁 난도는 더 올라간다.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한 가닥 염기서열로 복제하는 속성이 있는 RNA 바이러스치고 코로나19는 변이가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변이가 심해 백신 개발이 안 되는 C형 간염 바이러스만큼 악질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치료약과 백신 개발에 전력투구해야 할 상황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더위#코로나19#무증상 감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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