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약속 어긴 日 군함도 전시관 “조선인 차별 없었다” 왜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4일 20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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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구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자리 잡은 산업유산정보센터. 투명 유리로 된 현관을 지나니 65인치짜리 대형 TV 화면 7개가 붙은 스크린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화면에서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나가사키현의 일명 ‘군함도(하시마)’ 탄광의 모습이 다각도로 소개됐다.

다른 공간에선 군함도에 살았던 주민의 증언 영상이 흘러나왔다. 태평양전쟁 당시 어린 시절을 부친과 함께 군함도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진 재일교포 2세 스즈키 후미오(鈴木文雄·고인) 씨는 영상에서 ‘조선 출신자들이 노예노동에 내몰렸나’라는 질문에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인이 채찍을 맞은 건 아니다. 작업반장이었던 아버지는 임금을 잘 받았다”고 말했다.

영상에 나온 대만 징용자도 “급여를 정확히 받았다”고 증언했다. TV 화면 옆 패널에는 월급봉투가 전시됐다.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은 모두 같은 일본인이라서 차별이 없었다. 학대도 없었다”는 일본인의 증언도 있었다. 정보센터 어디에도 한국인 등이 군함도에 끌려와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을 한 것에 대한 사과나 이들을 추모한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도쿄특파원 공동취재단이 이날 정보센터를 방문해 확인한 결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유네스코가 요구했던 조치 사항을 일본이 지키지 않아 국제적인 비난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정보센터를 15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한다.

한일 양국은 2015년 7월 일본이 23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을 때 격렬한 외교전을 벌였다. 한국 정부는 “군함도를 포함한 11곳에 조선인 6만3700여 명이 징용돼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기 때문에 인류 보편적 가치를 기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세계문화유산 결정 직전 유네스코 위원 국가들을 상대로 한 발언에서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일본은 정보센터 설치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은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1078㎡(약 326평)에 이르는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산업유산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유네스코는 약속 이행을 권고할 뿐 등재 취소 등 강제적인 조치를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의 기준에 따르면 유산 자체가 훼손되거나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 경우에 등재 취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도통신은 13일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하고 있을 당시 군함도엔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가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부인하는) 정부의 대응은 이런 정설을 ‘자학사관’으로 보고 이에 반론을 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어 “과거의 사실을 덮는 역사수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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