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각지대로 변해버린 ‘내 집 앞 도로’…단지 내 교통사고 예방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8일 17시 39분


코멘트
LH 제공
LH 제공
3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아파트단지.

4000여 가구 대단지인 이곳은 일명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다. 하지만 준공년도가 오래되다보니 지하는커녕 지상 주차장도 부족한 실정. 초등학교 정문 앞마저 차량 5대가 일렬로 불법 주자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날 오후 내내 지켜본 현장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었다. 꽉꽉 들어찬 차들 사이로 이더서 사람이 불쑥 나타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좁은 통로로 차들도 겨우겨우 빠져나가는 모습도 이어졌다. 한 유치원생은 평행 주차한 자동차 사이에서 나오나 배달 오토바이랑 부딪힐 뻔도 했다. 주민 이모 씨(36)는 “실제로 몇 년 전에 한 어린이가 차에 치이는 사고도 발생한 적이 있다”며 “재건축 단지라 도로 보수도 안 돼 더 위험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도로 사고는 도심에서 끊이지 않는 골칫거리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야 할 내 집 앞 도로가 오히려 안전사각지대가 되버렸다. 공동주택 내 도로는 해마다 전국에서 10만 건 이상 크고작은 사고가 발생하지만, 관련 법령 미비로 처벌이나 단속이 쉽지 않다. 법적으로 도로가 아닌 ‘도로 외 구역’이기 때문이다.

● ‘자기 집 앞 비극’ 이젠 사라져야

아파트 단지 도로의 취약성은 꼭 오래된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2일 교통안전공단 연구진과 함께 찾은 경기 고양시 한 아파트는 준공 15년 정도 된 ‘준 신축’이다. 지하주차장도 넉넉하고, ‘볼라드(차량진입제어 말뚝)’ 등 교통안전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단지 정원에 심은 회양목이 문제였다. 1m 이상 자라며 교차로 반대편에서 회전에서 들어오는 차량을 볼 수가 없었다. 이날도 서내 대가 그냥 들어오다 급정거를 했다. 한 주민은 “아파트 단지에 설치한 출입구 3곳이 입출구 표시가 명확하지 않아 역주행으로 들어오는 차량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현행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는 차량이 시속 20㎞ 이하로 주행하도록 설계된다. 하지만 도로교통법 상 사유지로 취급돼 이를 어겨도 경찰이 단속할 권한이 없다. 심지어 법적으로 운전자는 단지 내에서 보행자 보호 의무조차 없다.

아파트단지 도로가 본격적으로 논란이 된 건 2017년부터다. 대전에서 119구급대원인 엄마가 5살 딸과 장을 보고 집에 오다 아파트 횡단보도에서 승합차에 치였다. 딸은 목숨을 잃었고, 엄마는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며 도로교통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섰다. 당시 경찰청은 “도로 외 구역에서 보행자 보호 의무 신설과 위반 시 제재 수단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도 이러한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다. 하지만 지난달 임기가 만료된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 처분됐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동안 비극은 계속됐다. 올해 4월 전북 정읍시에선 자동차를 몰던 어머니가 아파트 커브길을 돌다 자신의 8세 아들을 치어 숨지게 했다.

임채홍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캐나다는 난폭운전과 사망사고 등 일부 교통 규정을 사유지에도 적용한다. 미국의 대다수 주들은 주민 동의와 지자체 승인을 거쳐 아파트와 학교에 교통법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 교통안전 친화적인 아파트 설계를


아파트 단지 도로와 같은 도로 외 구역은 정부 차원에서 수집하는 통계조차 없다. 국가가 관리하는 공로(公路)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간 보험업계에서 사고 내역 등을 분석해 간접적으로 추산할 뿐이다. 보험개발원이 2017년 발생한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전체 약 400만 건 가운데 아파트 등에서 벌어진 사고가 16.4%(약 66만 건)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단지를 경찰이 단속할 수 있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단지 시설을 교통안전 친화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대방주공아파트는 2017년까지만 해도 매달 2, 3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입주민 어린이가 택배차량에 깔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아파트는 2017년 교통안전공단의 컨설팅을 받아 주요 건널목에 횡단보도와 과속방지턱 설치 등 시설 개량에 나섰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대략 사고 자체가 30% 이상 줄었다. 인명사고는 개선 뒤 1건도 없었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도로는 올해 말부터 조금씩 희망이 엿보인다. 11월부터 아파트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지방자치단체에 의무 보고해야 한다. 단지의 교통안전시설 진단·개선 의무화 등이 담긴 교통안전법 개정안도 시행될 예정이다.

윤공현 교통안정공단 책임연구원은 “현재는 기존 단지의 교통시설 개선에 집중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아파트 설계단계부터 교통안전 친화적인 시설을 반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공동주택을 짓기 전 지자체 심의 단계인 교통영향평가에서 교통안전시설을 반드시 검토하도록 도시교통정비촉진법 등 관련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