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든 것이 불투명한 시기, 영화 ‘침입자’가 제법 규모가 있는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는 처음 스크린으로 향한다. ‘침입자’는 3월 개봉을 준비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에 두 차례나 개봉이 연기됐지만 4일을 개봉일로 확정했다.
감독은 손원평(41).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소설 ‘아몬드’의 그 베스트셀러 작가다. 손 감독은 ‘아몬드’로 2016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다. ‘아몬드’는 올해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에서 아시아 소설로는 처음 수상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는 2001년 씨네21에서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평론가로 등단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연출을 전공하며 여러 단편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그의 아버지는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언니는 손원정 연극 평론가 겸 연출가다.
‘침입자’는 그의 첫 장편영화다. 장르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향한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서울 종로구에서 지난달 29일 만난 손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오히려 ‘한 줄도 더 써지지 않던 시기’에 대해 털어놨다.
“소설을 신춘문예에 계속 응모했고 영화도 잘 안되던 시기가 길었어요. 시나리오도 한 줄도 쓰지 못한 때가 있었지요. 당시에는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몰랐던 것 같아요.”
2013년 출산을 계기로 수많은 질문이 그를 찾아왔다. 아이를 낳고 절박한 마음에 쉬지 않고 습작을 했다. 다가오는 모든 의문을 글로 풀었다. 동화도 쓰고 시나리오도 쓰고 소설도 썼다. ‘아몬드’와 ‘침입자’ 모두 이 무렵 태동한 이야기다.
‘침입자’는 서진(김무열)이 사는 집에 25년 전 실종된 동생 유진(송지효)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익숙한 가족과 집이 한순간 낯설게 변하는 상황을 스릴러로 풀어냈다. 가족과 집에 대한 통념을 비틀었다는 점에서 소설 ‘아몬드’와 비슷한 면이 있다.
글 쓰는 사람답게 서사를 장악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그는 “글 쓰는 일이 너무나 지난하고 힘들다. 5분에 한 번씩 딴짓을 한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첫사랑을 기다리는 순간처럼, 어떤 이야기를 쓸지 구상하는 그 순간을 좋아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성하며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오. 처음과 맨 끝을 경험하는 것, 그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 철저히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라면 영화를 만드는 일은 그 정반대에 있다. 가끔은 영화라는 장르가 내뿜는 에너지가 버거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시간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절대로 영화를 해서는 안 돼!’라고 스스로에게 외치고 싶어진다고 한다.
“영화는 같이 해서 든든해요. 한데 다른 취향과 세계관을 지닌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서 만들어내잖아요. 그 과정에서 오는 에너지와 스트레스가 보통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봉준호 감독님 말씀처럼 ‘영화를 그만둘 수 없는 병’에 걸렸나 봐요. 징글맞으면서도 재미있고, 서로 의견 충돌이 벌어질 때 다시금 되돌아보는, 관둘 수 없는 매력이 있어요.”
이 ‘장르 여행자’의 차기작은 소설이다. 격월간지 악스트에 연재했던 ‘일종의 연애소설’을 모아 낼 예정이다. 소설가, 영화감독, 평론가 중 어떤 이름을 가장 아끼는지 묻는 우문에 그의 답은 이랬다. “‘나에게서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스스로 물으면 부정의 답만 들려오는 것 같아요. 어떤 이름을 앞세우기보다는 영화든 소설이든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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