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잡초로 본 유럽의 문화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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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향기/알랭 코르뱅 지음·이선민 옮김/288쪽·1만6000원·돌배나무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마들렌 시장은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쓸모없는 풀도,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서 쓸모없는 풀이란 잡초나 쐐기풀을 말한다. 17, 18세기 영국에서는 서민들을 잡초나 쐐기풀에 빗대었고, 빅토르 위고는 쐐기풀을 가장 좋아했다. 미국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천대받는 풀에 대한 연민을 표현했으며,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는 초원을 “모두가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사회”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인 독자의 머리에는 김수영 시인(1921∼1968)의 ‘풀’도 떠오른다.

나무도 꽃도 아닌 ‘풀’을 소재로 한 문화사 책이다. 지극히 미시적인 소재에서 시작해 유럽의 다양한 예술가들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위고는 물론 에밀 졸라, 보들레르, 헤르만 헤세 등 대문호의 문장도 등장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나라에서 나올 법한 섬세한 서술이 돋보이며, 잘 알려진 예술가들의 소소한 생각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저자는 근대사와 미시사를 전공하는 프랑스의 역사학자로 투르대, 판테옹소르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퇴직 후에도 연구와 저술을 이어가고 있다. 감각과 욕망, 시간, 공간 인식, 유혹 등의 단순한 주제에서 사고를 확장시켜 나간다. 대표작 ‘악취와 향기’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영향을 줬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풀의 향기#알랭 코르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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