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 김용희, 354일 만에 땅 위로…“다리 뻗고 자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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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5월 29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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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사거리 폐쇄회로(CCTV) 철탑에서 355일만에 고공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후 발언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0.5.29/뉴스1 © News1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사거리 폐쇄회로(CCTV) 철탑에서 355일만에 고공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후 발언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0.5.29/뉴스1 © News1
삐익삐익.

29일 오후 6시37분쯤, 소방차 사다리가 서서히 25m 상공 위 교통 폐쇄회로(CC)TV 철탑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소방차는 쉴 새없이 경고음을 냈다.

삼성을 상대로 명예복직 및 공식 사과라는 결실을 얻어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61)는 고공에서 깃발을 흔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삼성 로고와 함께 ‘삼성피해자공동투쟁’이라는 글자가 적힌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사다리는 철탑 가까이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다. 현장 관계자는 “센서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사다리는 다시 한번 철탑으로 올라갔다. 오후 6시53분, 사다리는 철탑에 닿았고 소방 안전요원의 안내에 따라 헬멧과 안전띠를 착용한 김씨는 지상으로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오후 7시4분쯤 김씨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땅을 밟았다. 고공농성에 나선지 355일째 되던 날이었다.

김씨와 삼성해고노동자고공농성공동대책위원회(삼성공대위)는 29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2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6년간의 투쟁 결과를 발표했다. 현장은 삼성공대위 및 지원단체, 정의당 관계자,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김용희 “해고 노동자의 삶 알리고자 철탑으로…다리 뻗고 자는 게 꿈”

“해고 노동자의 삶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사회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지상으로 내려온 김씨가 입을 열었다. 김씨가 쓴 모자 사이로 길게 자란 흰 머리가 삐져나왔다. 김씨가 입은 회색 바지와 갈색 신발은 깨끗한 새 것이었다. 그는 “전태일 열사 동생분이 주신 덕분에 오랜만에 좋은 바지와 좋은 신발을 신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삼성도 이번 투쟁을 통해서 새로운 노사문화가 자리매김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면서 “‘노’와 ‘사’는 상생해야 한다. 적대관계 속에서 노사문화를 발전시킬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철탑 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며 “나 하나 떨어져 죽으면 우리 가족들 보상비는 주겠지, 수없이 저 자신과 싸우고 날짜를 선택했다”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김씨는 1982년 12월 삼성항공(테크윈) 창원 1공장에 입사해 경남 지역 삼성 노조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95년 5월 해고됐다. 삼성그룹은 무노조 경영이 방침이었다.

김씨는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정년퇴직을 몇 달 앞둔 시점이었을 지난해 6월3일부터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같은 달 10일부터는 25m 상공 위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CC)TV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실수로 패소한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1차 해고 후 항소했을 때 문 대통령이 제 변호사였다”며 운을 뗐다. 문 대통령이 당시 결정적 증거인 공증서를 깜빡하고 제출하지 않아 항소에서 패했고 김씨 자신이 스스로 상고해 승소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땅에 내려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다리 한 번 뻗고 자고 싶다”고 했다. 그는 “누구에겐 일상이지만 저에겐 꿈이었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후 김씨는 자리에 참석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삼성공대위 및 지원단체 관계자와 소회를 나눴다.

◇“사과를 통해 김용희 명예회복”…삼성 사과문 공개

삼성공대위 협상대표인 임미리 고려대 교수는 “김용희의 농성 문제가 삼성과의 양측 합의를 통해 2020년 5월28일 최종 타결됐다”며 “삼성의 사과를 통해 명예회복 되었다”며 협상 결과를 공유했다.

임 교수는 “4월29일 협상을 시작해 만 한 달 되는 어제 오후 6시 협상을 타결했고 오늘 오전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며 삼성 측의 공식 사과문을 낭독했다. 다만 임 교수는 “여기까지만 말하기로 해서 더 말할 수 없다”며 상세한 합의 내용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이날 앞서 삼성그룹도 입장문을 내고 “양측의 합의에 의해 농성 문제가 최종 타결됐다”고 밝혔다. 삼성은 “김용희씨에게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고 김씨 가족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김용희 당원의 오늘 승리는 노동기본권을 차단했던 삼성의 높은 담벼락을 허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삼성이 사람답게 일하고 사람답게 대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보암모), 과천철거민대책위원회(과천철대위) 등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이들도 앞으로 나와 발언했다.

앞선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무노조 경영 전략 폐지를 알린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했다.

이날 삼성공대위는 삼성의 사과문도 함께 공개했다. 해당 사과문에서는 “김용희님의 장기간 고공농성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김용희 님은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그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사가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점으로 인하여 그 가족분들이 겪은 아픔에 대해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조속히 건강을 회복하시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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