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이정협, 진흙 속에서 빛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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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울산전 득점, 부산 승격 첫 승점
4년 만의 1부 골이라 감회 새로워
2월 탈장 수술로 정상 아니지만 몸싸움 마다 않고 팀플레이 주력

부산 제공
부산 제공
말끔했던 유니폼 곳곳에 녹색 물이 들고 갈색 흙이 묻었다. 온몸을 던져 슬라이딩을 하거나 몸싸움 끝에 넘어져 잔디 위를 뒹굴면서 생긴 것이다. 최전방에서의 왕성한 활동량, 적극적 수비 가담이 강점인 공격수 이정협(29·사진)에게는 영광의 흔적들이다.

프로축구 K리그1 부산의 이정협은 24일 울산과의 경기 후반 9분에 동료의 패스를 가슴으로 절묘하게 트래핑한 뒤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국가대표 수문장 조현우가 지키는 울산의 골문을 열었다. 이후 상대의 총공세에 1골을 내줘 1-1 무승부로 끝났지만 이정협의 골은 5년 만에 1부로 승격한 부산이 2연패 끝에 시즌 첫 승점(1점)을 획득하는 토대가 됐다.

이정협은 27일 전화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2016년 울산 소속으로 골을 넣은 이후 4년 만에 1부에서 득점해 뜻깊었다. 우승 후보 울산을 상대로 승점을 획득해 팀원 모두가 자신감을 얻은 만큼 수원전(30일)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울리 슈틸리케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시절(2014∼2017년)에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뛰며 ‘황태자’로 불린 그는 2017년 이후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조금씩 잊혀져 갔다. 2018년 8월 지금의 파울루 벤투 감독 부임 이후 이따금씩 대표팀에 호출됐지만 붙박이 멤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는 잊었다”며 초심으로 돌아간 그는 쇼난 벨마레(일본)에서 임대를 마치고 지난해 부산(당시는 2부 소속)으로 돌아와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인 13골을 터뜨리며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가 울산전에서 올 시즌 첫 선발로 나서 골을 터뜨리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 이정협은 “탈장으로 2월 독일에서 수술을 해 4월 초에야 그라운드 훈련을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막이 연기된 덕분에 재활을 마치고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탈장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매일 1시간씩 복부와 엉덩이 주변 근력을 강화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정협은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투지와 수비를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동료가 득점을 노릴 공간을 만들어주는 데 능하다. 하지만 공격수로서 득점력은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대해 그는 “수비수들과의 격전으로 ‘진흙투성이’가 돼 팀 승리를 도울 수 있다면 골이 없어도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득점 욕심을 버리고 조연에만 머물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보다는 많은 득점을 하고 더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국가대표에 대한 꿈도 은퇴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이정협#프로축구 k리그1 부산#울리 슈틸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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