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아이들이 더이상 생리대로 고민하지 않았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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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나눔]6개월간 생리대 60만개 기부한 이지웅 ‘업드림코리아’ 대표

소셜벤처 ‘업드림코리아’의 이지웅 대표가 25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자사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소셜벤처 ‘업드림코리아’의 이지웅 대표가 25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자사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세상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어린 학생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사회적 기업 ‘업드림코리아’의 이지웅 대표(31)는 생리대를 만드는 남자다. 소비자가 이 회사의 생리대 ‘산들산들’ 하나를 사면 국내 저소득층 소녀들에게 생리대가 하나씩 기부된다. 해외 빈민층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옷을 만들고, 판매 수익으로 학교를 지어주기도 한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국내외 아이들을 위해 뛰고 있는 이 대표를 25일 인터뷰했다.
○ ‘깔창 생리대’에 놀란 청년
그가 생리대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창 뜨거웠던 이야기가 ‘깔창 생리대’였다. 한 개에 몇백 원 정도인 생리대지만, 이마저도 살 돈이 없어 휴지를 겹쳐 쓰거나, 운동화 깔창을 대신 쓴다는 소녀들의 이야기가 그에겐 충격적이었다.

“제가 남자니까 뭘 알겠어요. 한 여성이 월경 주기 동안 그렇게나 많은 생리대가 필요한지 몰랐어요. 게다가 한국의 생리대 값이 유난히 비싸더군요.”

이 대표는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서 생리대 시장을 조사해 봤다. 그 결과 한국의 생리대 시세가 유난히 비싸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에 따르면 해외에선 ‘중형 생리대’가 개당 180원 수준인데, 한국에서는 대체로 330∼500원 정도다. 생산과 유통 구조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여보면 가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생리대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7년 그는 자금 마련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 30일도 안 된 기간에 약 1억3600만 원이 모였다. 이 대표는 의사, 간호사, 상품개발 전문가, 대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생리대 ‘산들산들’을 개발했다.
○ ‘탐스’처럼 1+1
그가 생리대를 만들며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여성이라면 누구나 적당한 가격으로 흡수력도 좋고, 원료도 좋은 생리대를 이용할 수 있게 합리적인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일반 소비자들이 생리대 하나를 구매할 때마다 저소득층 소녀들에게도 하나를 기부하도록 하는 ‘착한 소비’를 만드는 것이다. 신발 한 켤레를 사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똑같이 한 켤레가 기부되는 유명 신발회사 ‘탐스’처럼 소비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부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업드림코리아에서 판매하는 생리대는 1팩에 3900원 선. 시중의 일반 생리대 가격이 5500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저렴한 편이다. 창업 이래 지금까지 회사에서 저소득층 소녀들에게 기부한 생리대는 약 60만 개. 금액으로 따지면 2억 원이 넘는다.

이 대표는 해외 빈민촌 어린이 지원에도 관심이 많다. 이는 생리대를 만들기 전부터 시작한 일이다. 대학교 4학년을 마치고 2011년 겨울 친구와 여행을 떠났던 그는 인도에서 특별한 경험을 한다. 먹던 빵을 돼지들에게 던져주고 있었는데, 그것을 함께 주워 먹는 어린이를 본 것이다. 너무나 해맑게 웃으며 쳐다보는 아이를 보면서 이 대표는 ‘왜 같은 인간인데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그는 2015년 2월 ‘디럽(DLUV)’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캄보디아 빈민가 아이들의 그림과 스토리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드는 소셜 패션 브랜드다. 다문화가정 출신의 모델 한현민을 기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디럽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는 캄보디아 빈민촌에 마을학교 1채, 집 4채, 놀이터 1동을 지어 줬다.
○ “회사가 사라지는 게 목표”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가난엔 이자가 붙는다는 사실이 불편하다”고 여러 번 말했다. 가난은 단지 돈이 없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빈곤은 학습 결손과 건강 악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제때 공부하지 못하는 것,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것은 성인이 되었을 때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이 대표는 사회적 기업 활동을 통해 그 가난의 고리를 조금이라도 끊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는 이들도 많다. 지난해엔 SK가 설립한 사회적기업 ‘행복나래’의 상품 경쟁력 강화 사업에 선발된 덕분에 가방을 개발하고, 그 수익을 캄보디아에 기부할 수 있었다.

인터뷰 말미에 “꿈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회사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저소득층 아동과 관련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기업인 만큼 언젠가 그 모든 문제가 사라져 회사가 없어져도 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의미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이지웅#업드림코리아#생리대 사업#깔창 생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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