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오늘도 우리는 생물 20만종과 ‘집콕’ 중

김민 기자 입력 2020-05-23 03:00수정 2020-05-2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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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롭 던 지음·홍주연 옮김/368쪽·1만7000원·까치
집안 구석구석에서 절지동물을 채집하고 있는 곤충학자 맷 버톤. 집안에 서식하는 생물은 20만 종이나 되며 세균은 조류와 포유류를 합친 수보다 많이 발견된다. 까치 제공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두 가지 일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첫째 욕실 샤워기 헤드 교체하기, 둘째 손에 양념을 푹푹 묻혀가며 김치 담그기. 이 일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집 안의 생태계와 관련이 있다.

1676년 네덜란드 델프트의 직물 거래 상인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미생물을 발견하는 순간으로 책은 시작한다. 레이우엔훅은 직접 만든 현미경으로 후추물 속 세균을 관찰했다. 저 멀리의 자연이 아닌 집 속 미생물을 맨눈으로 관찰한 첫 시도였다.

“생태학자들이 먼 곳만 보는 습관이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는 자신과 연구진이 관찰한 집 속 생태계를 소개한다. 미국의 가정집을 “코스타리카의 우림이나 남아프리카 초원을 다루듯” 연구한 결과는 놀라웠다. 수백 종으로 예상됐던 집안 생물은 20만 종 이상이었으며 발견된 세균의 종은 지구상의 조류와 포유류의 종보다 더 많았다.


책의 주제만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콕’(집에만 머무르기)이 일상이 된 지금, 몰라도 될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는 오해가 들지도 모르겠다. 특히 샤워기 헤드에 관한 연구 결과를 다룬 부분에선 약간의 공포감마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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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물이 뿜어지는 샤워기 헤드 속 세균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생물막을 형성한다. 쉽게 말하면 “세균들이 수도관 안에 힘을 합쳐 똥을 싸서 쉽게 부수기 힘든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 ‘식사 중’인 세균들은 샤워할 때 우리 몸으로 와르르 쏟아진다. 물론 이 중에는 세로토닌 생산을 촉진하는 좋은 미생물도 들어 있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건 소독된 수돗물에서 유해 세균이 더 많이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지하수에서 끌어온 물은 그 안의 생물 다양성 덕분에 유해 세균이 적었다. 무슨 균이든 일단 없애고 보자는 화학적 살균이 오히려 더 큰 해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모든 집의 불청객 바퀴벌레도 마찬가지. 인간이 독한 약을 개발할수록 바퀴벌레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로 대응하며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다.

일련의 연구 끝에 저자는 우리 몸의 생물 다양성을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놀랍게도 발효식품이며 대표 사례로 김치가 등장한다. 유명한 포크록 밴드 ‘에이빗 브라더스’의 첼리스트 조권과 그의 어머니 권수희와 식사하던 저자는 한국 사람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손맛’ 이야기를 듣게 된다. 김치 담그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보면 같은 재료를 써도 김치 맛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어쩌면 손맛이 미생물과 관련이 있으며 더 나아가 ‘집 맛’이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김치와 비슷한 발효식품인 빵을 연구한 결과 놀랍게도 제빵사의 손은 평균 25%, 최대 80%가 발효에 관련된 미생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매일 빵 반죽에 손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집 안과 몸에 유익한 종이 더 많이 살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가 ‘김치 담그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 밖에 책은 집 속의 곰팡이, 절지동물, 꼽등이는 물론 고양이의 장(腸) 속까지 들여다본다. 이 과정을 통해 나만의 것인 줄 알았던 집이 사실은 공존하는 생명으로 가득 찼음을 깨닫고, 겸허함을 느끼게 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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