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뭐입지?]그 남자의 ‘피케’를 ‘픽’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스타일 매거진 Q]
단정한 피케 티셔츠, 활동성-편안함 두루 갖춰
냉감소재는 여름 비즈니스 캐주얼 룩으로 인기

게티이미지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
원치 않았던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소비의 검역’(소비의 필요성을 재고하여 최소한의 소비를 행하고 제품이 가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했다. ‘보복적 소비’(억압됐던 소비심리가 폭발하는 현상)에 대한 장기적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이미 적은 물건으로도 일상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소비자들이 철마다 트렌드에 따라 새 옷을 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패션업도 예전과 같은 성장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면서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던 ‘의식 있는 소비’의 물꼬가 터진 지금, 패션에서도 유용함을 두루 갖춘 아이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에잇세컨즈 남성 피케티셔츠
에잇세컨즈 남성 피케티셔츠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온 5월, 누구나 한두 벌쯤은 가지고 있을 ‘피케 티셔츠’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에센셜 아이템’으로 제안한다. 피케 티셔츠란 두서너 개 단추와 단정하게 목깃이 달린 피케 조직의 반팔 티셔츠다. 형태와 유래, 소재에 따라 폴로셔츠, 피케 티셔츠라고 불리기도 하고, 잘못된 약칭인 PK 티셔츠 혹은 카라티와 같이 다양한 별칭으로 불린다.

피케 티셔츠는 1920년대 테니스 챔피언 르네 라코스테가 당시의 불편한 테니스 유니폼 대신 입기 시작해 큰 사랑을 받았다. 옷깃이 있어 단정한 느낌을 주면서도 특유의 활동성과 편안함을 갖췄다. 폴로를 비롯한 다른 스포츠 유니폼으로도 활용되며 ‘폴로 셔츠’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 이후 아이비리그의 엘리트적 이미지로 두루 사랑받았던 트래디셔널 캐주얼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피케 티셔츠를 내놓으며 빠르게 대중화됐다. 작은 구멍(피케·Pique)이 반복된 독특한 피케 조직은 몸에 닿는 부분을 최소화해 통기성을 높여준다. 덕분에 피케 티셔츠는 여름철 쾌적하게 입을 수 있는 대표적인 상의로 자리매김했다.

엠비오 남성 피케티셔츠
엠비오 남성 피케티셔츠
피케 티셔츠에 대한 일부 선입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몸에 꽉 끼는 사이즈와 커다란 브랜드 로고, 큼지막한 글씨가 새겨진 목깃을 세워 입는 스타일이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형태만 피케 티셔츠이고 소재는 광택이 차르르 도는 실켓 티셔츠가 중년 아저씨들의 데일리 웨어로 각광 받으며 멋과 거리가 먼 구시대적 아이템으로 낙인 찍혔다. 단추를 끝까지 채운 단정함으로 모범생 느낌을 주는 피케 티셔츠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고 캐주얼한 스트리트 웨어가 붐을 일으키는 시대에는 고루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이면서도 적당하게 격식을 갖춘 다양한 대안이 넘쳐나는 탓에 그동안 피케 티셔츠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은 더욱 단단해져 왔다.

그러나 고루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피케 티셔츠는 지속가능한 소비에 어울리는 에센셜 아이템으로 재조명받으며 변화 중이다. 단추 대신 지퍼를 달거나 목깃 형태를 바꾸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단정하기만 하던 피케 티셔츠의 첫인상이 달라지고 있다. 근무 형태가 다양하게 분화된 지금, 셔츠의 목깃 형태를 토대로 디자인을 변형한 피케 티셔츠는 셔츠보다 뛰어난 활동성으로 비즈니스 캐주얼 룩에서 셔츠의 대체재로 손색이 없다.

경기 중 햇볕에 목이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우던 목깃을 아예 떼어 낸 라운드넥이나 후드 스타일로 시원한 피케 소재의 장점을 살리고 옷 입는 맛을 달리해 단조로움을 탈피하기도 한다. 몸에 꼭 맞게 입는 대신 여유로운 핏감을 선택한다면 좀 더 자연스럽게 세련된 느낌으로 입을 수 있다. 비비드하거나 대비가 강한 컬러 블록이 주는 캐주얼함 대신 무채색 계열의 단색을 선택해 여유 있는 하의와 통일된 컬러 조합으로 코디해 입는 편이 훨씬 더 멋스럽다.

빈폴 비싸이클(B-Cycle) 피케티셔츠
빈폴 비싸이클(B-Cycle) 피케티셔츠
혁신 소재의 피케 티셔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넘쳐나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해 지구를 지키고자 하는 랄프로렌의 ‘어스 폴로(Earth Polo)’ 시리즈와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리사이클 폴리 소재에 냉감 기능까지 더해 시원한 여름을 즐기게끔 만든 빈폴의 비사이클(B-Cycle) 피케 티셔츠까지 단정한 멋에 환경을 생각하는 올바른 가치관까지 더한 제품들이 속속 제안되고 있다. 친환경 염색 공정을 거친 자연스러운 컬러 제안으로 밀리터리 무드의 카키 팬츠나 편안한 실루엣의 치노 반바지와 자연스러운 조합이 가능하다.

유례없는 더위가 찾아올 것이란 예보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로크다운(Lock Down·이동제한령)의 긍정적 효과로 오존층이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를 막기엔 충분치 않은 듯하다. 환경까지 생각한 올바른 가치관의 피케 티셔츠를 선택해 오랜 선입견에서 탈피한다면 분명 더운 여름 스타일링에 청량한 생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
#스타일매거진q#피케 티셔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