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금기의 뒷면에서 군림한 윤미향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20-05-20 03:00수정 2020-05-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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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체제 느슨한 금기의 뒷면… 배임 횡령 유혹 작동하기 쉬워
위안부 할머니 향한 협박은 자신이 피해자 결정한다는 무도함
대리인이 주인 행세 말아야
송평인 논설위원
독일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책 ‘토템과 터부’에는 터부(taboo)의 뜻을 설명하는 친절한 부분이 나온다. 터부는 두 가지 상반된 방향의 뜻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신성한 것을 의미하고 한편으로는 섬뜩하고 불결한 것을 의미한다. 터부는 본래 태평양 폴리네시아인의 말이다. 폴리네시아어에서 터부의 반대말은 평범한 것을 뜻하는 노아(noa)라고 한다. 터부는 신성한 쪽으로든, 섬뜩하고 불결한 쪽으로든 특별한 것이다.

터부가 가진 두 가지 상반된 방향의 뜻은 실은 내적으로는 긴밀히 연결돼 있다. 죽음이나 정조의 상실은 섬뜩하고 불결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존재가 우리나 우리의 가족을 대신해서 섬뜩해지고 더럽혀졌다면 그 존재는 신성하다. 우리가 그 존재의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나 우리의 가족이 죽거나 정조를 상실했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우리 시대의 터부다.

터부는 금지와 연결돼 있다. 그래서 금기(禁忌)라고 한다. 행동으로든 말로든 터부를 함부로 다루는 것은 금지된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루는 어려움은 여기서 비롯된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학문적인 실증정신으로만 혹은 엄격한 법률 개념으로만 다루려는 시도가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이 문제가 일종의 제의(祭儀)적 차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윤미향 사태는 금기의 뒷면에서 금기를 다루는 자들의 충격적인 일상을 보여준다. 위안부 피해자를 돕기 위한 정부의 보조금, 기업의 후원금, 시민들의 기부금이 쏟아지지만 금기를 일반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금기의 그늘에서 감시 체제가 느슨해지고 배임과 횡령의 유혹이 작동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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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이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에게 한 협박은 더 충격적이었다. 그는 “약 30년 전 이용수 할머니가 모기 소리만 한 목소리로 떨면서 ‘저는 피해자가 아니고요. 제 친구가요…’라고 하던 그때의 상황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라는 글을 최근 페이스북에 올렸다. 위안부 피해자가 있고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있고 위안부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자신이야말로 누가 위안부 피해자이고 누가 위안부 피해자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임을 이용수 할머니에게 상기시킨 것이다.

윤미향의 협박은 한 할머니에 대한 협박 이상이다. 누가 위안부 피해자이고 누가 위안부 피해자가 아닌지 그 경계선이 확정돼 있는 것은 아니라는 암시를 던진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이 가진 일관성에 간혹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누구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그 후신인 정의기억연대가 그 문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들의 오래전 기억이 정확할 수도 없지만 꼬치꼬치 캐묻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면이 있다. 그런 점을 이용해 그들은 할머니들 위에 군림하는 힘을 갖게 됐을 수 있다.

이용수 할머니 이전에 심미자 할머니가 있었다. 심 할머니는 16년 전 정대협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정대협이 정해 ‘기억의 터’ 조형물에 새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47명의 명단에 들지 못했다. 심 할머니는 가해자인 일본의 최고재판소로부터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임을 인정받은 피해자인데도 그랬다. 신이 있어서 신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전이 있어서 신이 있다는 말이 있다. 정대협과 정의연은 말하자면 신전을 운영하는 사제들이었다.

이용수 할머니의 윤미향 비판은 정의연이 더 이상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불편해졌다는 뜻이다. 할머니들을 이용해 먹지만 말고 실질적 도움을 달라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기부금이 자신들을 돕기보다 교육과 홍보에 더 많이 쓰이는 것도 불만이지만 기부받은 돈으로 맨날 교육하고 홍보한다고 하는데 정말 빼돌리지 않고 교육이나 홍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금기의 자리에 앉혀 놓고 이용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 할머니들을 일상의 자리로 내려오게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생존하신 분들도 연세가 많다. 살아서 금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할머니들이 죽기 전에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심리다. 일본의 보상 문제에 정의연이 대리인 주제에 주인 행세 하며 더 이상 끼어들어선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윤미향#이용수 할머니#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정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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