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위안부 비즈니스’ 윤미향, 의원 자격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9일 14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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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누구도 입에 올리기 꺼렸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린 윤정옥 선생님(95)은 참 여리 여리한 분이다.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수 시절, 팔다리 길고 날씬한 모습에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미국 소설을 강의할 때는 꼭 뽀빠이 만화에 나오는 올리브 같았다.

정년퇴직한 다음 위안부 문제에 투신한 선생님이 놀라워 물어본 적이 있다.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내가 페미니즘을 했잖아. 내가 정신대에 끌려갈 뻔했거든.

동아일보는 199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의장을 맡고 있던 선생님에게 ‘여성동아 대상’을 수여했다. “문제를 세상에 꺼내놨으니 더욱 열심히 일하라는 뜻으로 생각하겠다”는 음성은 소녀 같았지만 선생님은 젊은 날의 신념과 학구적 열정을 행동으로 옮긴 참 지식인이었다. 그해 정대협 간사로 시작해 윤정옥을 이어받은 사람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겸 정의기억연대 대표. 동아일보DB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겸 정의기억연대 대표. 동아일보DB


● ‘이낙연 리더십’ 시험하는 윤미향

윤미향 당선자를 배출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와 당사자 관련 의혹이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나온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18일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밝힌 것을 보면 제명이 불가피하다고 내심 결론을 내린 듯하다.

민주당 지도부는 난감할 것이다. 부동산 의혹의 양정숙 당선자를 제명한 데 이어 윤미향까지 제명할 경우, 아무리 위성정당이지만 제대로 검증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낙연이 물러서면, 지지율 1위 차기 대선주자의 리더십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리더십으로 당 대표 선거에 나선다면 당선도 장담 못한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동아일보DB
이낙연 전 국무총리. 동아일보DB

이낙연이 앞장서 윤미향의 민주당 제명을 끌어낸대도 ‘꼬리 자르기’일 뿐이다. 의원직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비례대표 의원이 당적을 이탈·변경하는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정당으로부터 제명 결정을 받은 경우는 그 직을 유지한다’고 돼 있다. 윤미향은 18일 사퇴를 고려하지 않는다며 의정활동을 지켜봐달라고 했다. 윤미향의 정의연 활동이 다음 주부터는 국회에서 펼쳐질 판이다.

● 정의연은 위안부 해결 원치 않는다

7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 이후 쏟아지는 윤미향과 정의연 관련 의혹은 한도 끝도 없다. 본질을 따지면 외려 심플하다.

정의연의 전신(前身)인 정대협이 권력을 가지니 돈이 몰리고, 돈이 몰리니 초심을 잃은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못했다. ‘친일파의 부당한 공격’으로 몰릴까 봐서다. 이용수 할머니가 용감하게 거론했음에도 윤미향은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전략적 실수를 자행했다. 심지어 정의연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원치 않는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다. 위안부 지원단체라는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


● 배상금 아닌 동정금, 뿌리치게 하라

이건 나 혼자 주장이 아니다. 요즘 정의와 기억을 독점하려는 세력들이 많아 표현의 자유가 위태로운데, 2004년 이화여대 여성학과 김정란의 박사논문에 나오는 연구 결과다.

1995년 일본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했을 때 윤미향은 이 돈을 받으면 피해자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공창(公娼)이 되는 것이라는 막말을 했다. 윤정옥 역시 위안부 문제가 ‘침략정치의 골수’라며 배상금 아닌 동정금을 뿌리쳐 ‘전후 청산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심에서 한참 멀어진 것이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겸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지난해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사진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동아일보DB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겸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지난해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사진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동아일보DB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른 ‘화해·치유재단’의 기금도 정대협은 거세게 반대했다. 그러나 생존 피해자 34명, 사망자 유족 68명이 44억 원의 ‘치유금’을 받은 것으로 집계돼 있다. 교수 출신, 운동권 출신의 피해자단체 사람들에게는 피해자들의 구체적이고도 소박한 아픔은 단순한 ‘돈 문제’로 보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피해자 할머니들에게는 그토록 민족적 자존심만 강조한 사람들이 왜 피 같은 국고보조금이나 코 묻은 국민모금의 회계는 그따위로 처리했는지.


● 윤미향을 국회에 보낼 수 없다


윤미향의 국회 입성이 걱정스러운 이유는 국민의 돈을 가볍게 처리한 것처럼 세금 또한 함부로 여기며 사욕을 채울까 봐서다. 그는 여성인권평화재단법을 만들어 위안부 피해 진상 규명과 평화인권교사 양성 등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미향이 달랑 법 제정만 나설 리 없다. 여성인권평화재단이라는 것이 설립되면 국고를 통한 예산 지원은 당연지사, 윤미향과 비슷한 사람들이 재단에서 안정적 일자리를 갖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를 훤히 내다본 듯 “자기 사욕 차리려고 위안부 문제 해결 안 한 다음에 어디 엄한 데(국회) 가서는 해결하려고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개했다.

지난해 8월 서울 남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제막식에 참석한 이용수 할머니. 동아일보DB
지난해 8월 서울 남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제막식에 참석한 이용수 할머니. 동아일보DB

윤미향이 운동가 시절 주장해온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 공식 사과와 배상’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요구함으로써 한일관계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은 더욱 걱정스럽다. 일본이 정의연의 요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않는 한, 위안부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그게 과연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일까.

반대파, 아니 상식파를 토착왜구로 몰고 가는 집권세력의 전략은 윤미향의 얕은수로 인해 효능을 잃었다. 반일감정을 국정동력으로 삼아온 청와대가 단안을 내리지 못한다면, 이낙연이 윤미향의 제명과 사퇴를 이끌어내 리더십을 입증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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