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현대 건축물 잔해들… 파편화된 역사를 보는 감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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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미술관 ‘건축소장품’전
그을린 숭례문 용마루 장식물부터 삼일빌딩서 걷어낸 폐기물까지
대영박물관 파르테논 전시실 연상

전남 나주 불회사의 대웅전 기둥. 뒤쪽에는 벨기에 영사관으로 쓰였던 남서울미술관 실내장식재와 서울 숭례문 모형이 놓였다. SeMA 제공
전남 나주 불회사의 대웅전 기둥. 뒤쪽에는 벨기에 영사관으로 쓰였던 남서울미술관 실내장식재와 서울 숭례문 모형이 놓였다. SeMA 제공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높은 전시물 중 하나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건물 지붕을 장식했던 대리석 조각들이다. 6월 14일까지 서울 관악구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모두의 건축 소장품’전은 묘하게 대영박물관의 그 파르테논 전시실을 연상시킨다.

사적 제254호인 남서울미술관 건물은 1905년 벨기에 영사관으로 지어진 벽돌구조 건물이다. 원래 중구 회현동에 있던 것을 1970년 사들인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이 198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했다. 파르테논 신전에 부분적으로 적용된 이오니아 양식 돌기둥의 모사품을 이 건물 발코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술관 측은 “대표적인 한국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의 실물 자재를 모아 선보인다”고 밝혔다. 벨기에 영사관 시절에 이 건물에 붙어 있던 실내장식재 일부가 근대를 대표하는 전시품으로 놓였다. 18세기에 중건된 전남 나주 불회사 대웅전의 기둥 일부, 2008년 서울 숭례문 화재 때 수습한 지붕 용마루 장식물도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1세대 현대건축가인 김중업(1922∼1988)이 설계한 서울 종로구 삼일빌딩에서 걷어낸 폐기물도 사진 자료와 함께 전시됐다.

소장품전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잔해의 전시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남겨진 부속품들. 한데 모아놓았음에도 제각각 고립된 모습이 창백한 영안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에서 건축법이 만들어지고 건축사, 건축가라는 직업이 생긴 지 이제 겨우 50여 년이 지났다. 40대 건축가들의 현재진행형 작업까지 아우른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건축의 역사가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음을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남서울미술관#건축소장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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