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학생들도 주먹밥을”…文대통령 떨리는 목소리 부르튼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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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5월 18일 15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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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주먹을 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2020.5.18/뉴스1 © News1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주먹을 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2020.5.18/뉴스1 © News1
“직접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도 주먹밥을 나누고….”

문재인 대통령은 끝내 목소리가 떨렸다. 문 대통령의 왼쪽 가슴에는 ‘주먹밥’을 형상화한 5·18 40주년 배지가 달려 있었다. 기념식 내내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기 위해 힘주었던 대통령의 입술은 하얗게 부르텄다.

문 대통령은 “부상자들을 돌보며, 피가 부족하면 기꺼이 헌혈에 나섰다”라며 “우리는 독재권력과 다른 우리의 이웃들을 만났고,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보았다”라며 기념사를 이어갔다.

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처음으로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40년 전 민주화 열기로 가득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진상규명에의 의지를 다졌다.

이번 기념식은 망월동 묘역이 아닌,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거행했다. 옛 전남도청은 시민군이 최후을 맞은 결사항전의 현장이다. 광장은 항쟁 당시 본부였고, 광장 분수대를 연단으로 삼아 각종 집회를 열며 직접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곳이다.

문 대통령 역시 기념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 광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단상 뒤편에는 옛 전남도청 건물이, 문 대통령이 마주보는 정면에는 당시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 편집국이 위치한 곳이자 계엄군에 쫓긴 시민들이 몸을 숨겼던 전일빌딩이 자리하고 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한 문 대통령은 감정을 누르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광주·전남 시·도민 여러분, 오월 광주로부터 40년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남도청 앞 광장에 대해 “5·18 항쟁 기간 동안 광장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랑방이었고, 용기를 나누는 항쟁의 지도부였다”라며 “우리는 광장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대동세상을 보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장에 입장해서도 사회자인 방송인 김제동씨의 오프닝 멘트를 들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힘주어 입술을 깨물며 40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김제동씨는 “40년 전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향한 광주 시민들의 처절한 함성과 강인한 열망을 함께 느껴주시고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라며 “누구는 잊지 말자고 이야기하지만 잊을 수도 없고 잊힐 수도 없는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참석자들은 이날 ‘5·18’ 40주년 기념 배지를 착용했다. 배지는 원형으로 제작돼 숫자 5와 1, 8과 ‘40주년’을 상징하는 ‘40’이 담겼다. 원형은 당시 광주시민들과 학생들이 시민군에게 나누어 주었던 주먹밥과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했다. 주먹밥은 광주 공동체가 실천했던 나눔의 가치를, 떠오르는 태양은 5·18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문 대통령은 전날(17일) 광주MBC TV를 통해 방송된 5·18 40주년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배지를 착용했다.

오프닝 영상 ‘미래세대에게 전하는 5·18’은 영화 ‘26년’과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 등 5·18을 담은 영화의 장면으로 구성됐다. 이어 애국가 제창에서도 3절 부분은 5·18 민주화운동 기록 자료들로 구성된 화면이 상영됐다.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이자 미래세대 대표인 김륜이·차경태씨가 경과보고를 했다. 이어서 항쟁 당시 희생된 고(故) 임은택씨의 아내 최정희씨가 남편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임은택씨는 업무상 광주로 이동 도중 광주교도소 옆 고속도로에서 계엄군의 총소리에 차를 돌리는 과정에서 총에 맞고 군인들에게 끌려가 연락이 두절된 후 사망한 채 발견됐다.

최정희씨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여보 다시 만나는 날 나 너무 늙었다고 모른다 하지 말고 삼 남매 번듯하게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고 칭찬 한마디 해주세요, 참 잘했다고”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김륜이·차경태씨와 최정희씨를 위로했다.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서는 총 6번의 박수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오월 정신’은 더 널리 공감되어야 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미래를 열어가는 청년들에게 용기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재발견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5·18의 진상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진실이 하나씩 세상에 드러날수록 마음속 응어리가 하나씩 풀리고, 우리는 그만큼 더 용서와 화해의 길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새기는 것은 5·18을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라며 “언젠가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그 뜻을 살려가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참석자 전원이 오른손을 굳게 올리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면서 행사는 마무리됐다. 행사에 참석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도 함께 제창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제동씨는 10여년간 5·18 관련 봉사활동을 이어와 광주 5·18 트라우마센터의 추천으로 사회를 맡았다. 김씨는 이날 출연료 전액을 5·18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김씨가 대구 출신인 점도 의미를 둘만 하다. 5·18정신은 동서화해의 정신으로 승화했고 문 대통령도 기념사에서 대구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병상이 부족해 애태우던 대구를 위해 광주가 가장 먼저 병상을 마련했고, 대구 확진자들은 건강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라며 “‘오월 어머니’들은 대구 의료진의 헌신에 정성으로 마련한 주먹밥 도시락으로 어려움을 나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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