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채소 가꾸고 삶의 방식 나눠야”… 또 한번 변화 꿈꾸는 ‘밀짚모자 스님’

하동=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5-17 13:26수정 2020-05-1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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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남 하동 쌍계사 일주문에 다가서자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뜻의 ‘수류화개(水流花開)’라고 쓴 현수막 문구가 눈에 번쩍 들어왔다. 섬진강가의 흐드러진 벚꽃은 사라졌지만 봄볕과 물소리는 여전했다.

먹물 옷 아니라면 농부가 어울리는 ‘밀짚모자 스님’이 멀리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쌍계사 주지인 영담 스님이다. 13세 때 입산 출가한 뒤 1994년 종단 개혁을 주도했으며 불교방송 이사장과 동국대 이사,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등을 거쳤다. 종단 밖에서도 일이 손에서 떠나지 않는 팔자다.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현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공동대표, 국제한국어교육재단과 국제구호단체 하얀코끼리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밀짚모자가 어울립니다.

“2개월 전 주지로 왔는데 곳곳에 일할 곳 천지예요. 쌍계사 주변 밭과 차밭이 10만㎡(3만 평)가 넘어요. 벼농사는 어렵지만 고추 옥수수 콩 배추 무 고사리 호박, 오이, 감자…. 온갖 작물을 심어요.”


―본사(本寺) 주지가 처음이라니 뜻밖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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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얽매이는 것 좋아하지 않고 밖에도 일이 많아 주지 자리를 피해 다닌 거죠. 은사(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께서 정정하실 때는 거역도 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하죠. ‘쌍계사가 허물어질 때 와서 구석구석 손 때 안 묻은 곳 없다, 네가 가서 잘 정리해 봐라’고 하시니 어쩔 수가 없었죠.”

차를 건네던 영담 스님의 말이 인근 시배지(始培地)에 나온 차와 은사가 쓴 글씨로 옮겨졌다. 쌍계사 인근에는 1000년 동안 이어진 토종 야생 차밭이 있다. 2만6000여㎡(8000평)의 차 밭에서 한 해 녹차 300kg, 발효차 250kg이 생산되고 있다.

―차향이 좋습니다.

“은사께서 1975년 주지로 왔는데 차밭이 소들의 놀이터가 된 걸 보고 시배지 복원에 나선 거죠. 야생차가 오묘합니다. 풀을 매도 안 되고, 거름 주면 면역력이 떨어져 겨울에 냉해를 입어요. 대나무 밑 차나무에서 나오는 죽로(竹露)가 있어요. 대나무에 맺힌 이슬이 해가 뜨면 또르르 떨어지는데 그걸 먹고 산다고 해요. 쌍계사는 앞으로 차로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은사 스님의 글씨는 언제 봐도 좋습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는 백장 선사(720~814)의 청규죠. 그 가르침은 고산 문중에서는 불식촌음(不息寸陰)으로 이어집니다. 염불, 참선, 간경, 밭일로 잠시도 쉬지 말라는 거죠.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 더 절실한 ‘현재적 진리’ 아닌가 합니다.”

―무슨 뜻인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사람들 발길이 끊어졌어요. 앞으로 좀 나아진다고 해도 사찰을 찾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 겁니다. 도심 큰 사찰이나 몇몇 본사를 빼면 일반적 상황이라고 봐야죠. 스님들이 수행하면서 스스로 일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산불교(生産佛敎)’가 대안입니다.”

―생산불교요?

“사찰은 사람들이 시주하고 봉사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야 합니다. 스님들이 생산한 채소와 간장, 된장 등을 적절한 가격에 도시 사람들과 나누는 거죠. 물질적 교류에 이어 스님네들 삶의 스토리, 불식촌음이라라는 삶의 방식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확산돼야 합니다. ”

―스토리텔링이 있는 사찰인가요?


“생산불교 정립은 수행적인 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신도들 도움에만 의지하는 사찰, 나아가 종교는 살림살이 뿐 아니라 수행 가풍도 흐트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그릴 쌍계사의 스토리텔링은 무엇입니까.

“본사다운 본사가 되고, 본사 주지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쌍계사는 혜소 선사(774~850) 창건 이후 선교율(禪敎律)이 어우러진 차와 범패의 근본도량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스토리텔링을 잘 정비하고,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코로나 19로 부처님오신날 봉축 행사가 30일로 늦춰졌습니다.

“은사의 글씨 중 예기(禮記)의 글인데 ‘물위걸용지인(勿爲乞容之人) 능위서타지인(能爲恕他之人)’이라고 했어요. 용서를 비는 사람이 되지 말고 능히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죠. 코로나 19로 생긴 여러 문제가 중생의 최대 고통일 겁니다. 부처님이 고행 끝에 깨달은 것처럼 고행의 기간이라고 여기며 미래를 보면서 노력하면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동=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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