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증명하라’ 요구로 냈던 사표…법원 “무효다”

뉴시스 입력 2020-05-16 05:29수정 2020-05-16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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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증명해봐" 사직서 요구 후 수리
사표 제출 직후 노조 찾아가 자문 요청
사표 수리 후 구제 위한 법적조치 나서
법원 "실제 사의 없으면 효력도 없어"
경찰에서 회사 대표자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강제로 제출한 사직서에도 법적 효력이 있을까. 법원은 “실제로 사의가 없었다면 효력도 없다”고 봤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6월21일 다니던 회사 대표 B씨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참고인 신분으로 불려간 경찰 조사에서 B씨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당시 경찰은 B씨의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B씨는 “네가 사건의 주모자라는 말이 있다”며 수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한 A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A씨는 경찰에서 사직서 작성을 강요당한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B씨 사무실에 들어가자 B씨가 ‘네가 사건의 주모자라고 하는데 맞냐’고 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인했더니 ‘그럼 사표를 써서 네가 주모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 해 달라’고 해 원장실에서 직접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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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사직서 작성 직후 노조위원장을 찾아 가 “B씨로부터 허위진술 강요 및 진술 번복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억울하게 사직서를 작성했다”며 자문을 구하고 노조에 가입했다. 이같은 내용을 통보 받은 회사는 그럼에도 같은달 27일 사직서를 수리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작성된 사직서에 A씨가 실제로 회사를 그만둘 뜻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사직서를 수리한 직후 A씨가 서울중앙지법에 직원지위확인 가처분을 신청하고, B씨를 강요 등 혐의로 고소한 데 이어 서울지방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는 등 법적 조치를 취한 것이 근거다.

또 사직을 고려한 정황이나 개인적 사정을 찾아볼 수 없고, 사직서를 작성한 당일도 해외 출장에서 돌아와 근무지로 복귀하는 중에 B씨에게 불려간 것인데다가, 사직서 작성 이후에도 평소와 다름 없는 업무를 수행한 것 역시 근거로 봤다.

특히 B씨가 이에 앞서 3차례 A씨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게 한 적이 있는데, 이 때도 실제 사직 의사 없이 형식적인 충성심 확인 또는 근무태도에 대한 반성의 표현이었던 점 역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사직서를 작성했을 뿐이라는 A씨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아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 형식으로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다고 해도,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에게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일방 의사에 의한 근로계약 종료라서 해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직 의사가 없는 근로자의 사직서를 수리한 것은 해고에 해당하고 이에 정당한 사유가 없기 때문에 그 해고는 무효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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