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늦은 나이는 없다, ‘관심의 폭’이 넓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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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천재들의 비밀/데이비드 엡스타인 지음·이한음 옮김/464쪽·2만 원·열린책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성공한 우즈 타이거 우즈는 생후 7개월부터 골프채를 손에 쥐고 조기 교육을 받아 골프 천재가 된 ‘1만 시간의 법칙’의 전형적인 표본이다. 반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는 스키 레슬링 수영 야구 핸드볼 탁구 배드민턴 등을 하다 10대에 들어서 테니스를 택했다. 스포츠에서 성공한 사람은 의외로 페더러
스타일이 더 많다. AP 뉴시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성공한 우즈 타이거 우즈는 생후 7개월부터 골프채를 손에 쥐고 조기 교육을 받아 골프 천재가 된 ‘1만 시간의 법칙’의 전형적인 표본이다. 반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는 스키 레슬링 수영 야구 핸드볼 탁구 배드민턴 등을 하다 10대에 들어서 테니스를 택했다. 스포츠에서 성공한 사람은 의외로 페더러 스타일이 더 많다. AP 뉴시스
영국 맨체스터대 물리학 교수 안드레 가임은 2000년 터무니없어 보이는 연구에 주어지는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수상 연구는 반자성(反磁性)을 띠는 용액에 든 개구리를 자석으로 공중 부양하는 실험이었다. 그는 ‘인생을 낭비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던 다른 연구실의 박사과정 학생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두께가 머리카락 두께의 10만분의 1이면서 강철보다 200배 튼튼한 물질 그래핀을 개발해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서른세 살 무렵 미술학원에 등록해 10년 어린 학생들과 배우던 이 사람은 드로잉 대회에 나갔지만 “초급반에서 열 살 아이들과 함께 배우라”는 말을 들었다. 그 전까지 학생, 미술상(商), 교사, 서점 점원, 목사, 순회 전도사를 유망하게 시작했다 실패했다. 그림도 인물화를 그렸다가 풍경화로, 사실주의에 몰두하다 순수 표현주의로 빠졌다. 그러나 37세에 숨지기까지 4년간 길이 남을 걸작들을 남겼다. 빈센트 반 고흐다.

이 책에는 밖에서 보면 뒤처진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모두가 ‘일찍 선택해 반복적으로 훈련하고 그 일에만 집중하며 결코 흔들리지 말라’는 조기(早期) 전문화와 ‘1만 시간의 법칙’을 장려하는 현실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조기교육과 1만 시간의 법칙’은 익숙한 패턴의 문제와 해법이 반복되고, 특정한 기교를 정확히 갈고닦는 것이 목표이며, 반복 경험만으로도 개선이 이뤄지는 ‘친절한 환경’에서만 유리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세상은 대부분 코트에서 라켓으로 공을 주고받는 선수들을 볼 수 있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규칙을 모르는 ‘화성테니스’같이 기존 경험의 테두리 너머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사악한 환경’이다. 그럼 이 지독한 환경의 지배자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조기교육과 전문화에 한참 늦은 것 같은 이 ‘뒤처진’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통계와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들의 핵심 특징은 폭(레인지·range, 이 책의 원제다)이 넓다는 것이다.

경험과 관심의 폭, 훈련의 폭, 적용하고 종합하는 폭이 넓다. 사전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 사이를 신나게 오갈 수 있는 마음과 사고의 폭이 넓다.

안토니오 비발디가 협주곡 수백 편을 써준 17∼18세기 천재 음악가 집단 ‘필리에 델 코로(합창의 딸들)’는 고아들이었고 병자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 개개인은 성악은 물론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새로운 음악을 빨리 흡수해 바로크 음악과 고전 음악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20세기 대표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나 ‘Take 5’ 같은 명곡을 지은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브 브루벡은 악보를 읽지도 못했다. 그러나 독학이라는 더 다양한 맥락에서 행한 훈련의 폭은 그들의 창의성에 날개를 달아줬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2000년간 지탱하던 천체의 운행 방식을 깨뜨리기 위해 빛 냄새 향 등 동떨어진 분야에서 유추(類推)했다. 찰스 다윈은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폭넓은 분야 학자들의 지식을 게걸스럽게 그러모았다.

‘어떤 도구도 만능이 아니다. 모든 문을 여는 마스터키 같은 것은 없다’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저자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무용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학원은 전형적인 1만 시간 법칙의 신봉자다. 물리학자 다이슨의 말처럼 ‘눈앞에 집중하는 개구리’다. 그렇다면 학교는 ‘멀리 보는 새’가 되면 어떨까. 도전 과제들을 다양화하며 ‘한 발을 자기 세계 바깥에 딛고’ 서게 해줄 마음의 습관을 길러주는 곳 말이다. 세상은 깊은 동시에 넓으니까.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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