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당신들은 ‘조국’과 다르다

이기홍 논설실장 입력 2020-05-15 03:00수정 2020-05-1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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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은 조국류 가짜 진보와 달라
회계 개선되면 국민은 계속 힘 실어줄 것… 野도 이번 일 빌미 위안부 문제 폄훼 안 돼
與, 태종·세종 운운 ‘再건국’ 욕심내지만 친일파 프레임은 ‘찌질한’ 이념수준 드러내
이기홍 논설실장
일제강점기 군대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 이후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지켜보는 심정은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 평화 정의 등을 주창해온 인사나 단체의 위선이 드러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조국 사태가 자칭 진보인사들의 도덕성에 대한 눈높이를 땅바닥으로 낮춰 놓은 탓에 이제 웬만한 일에는 그러려니하는 국민이 많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그런 하류 좌파 단체나 인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국을 비롯한 숱한 자칭 진보 인사들, 단체들은 입으로만 떠들었지 실제로 우리 사회의 진보와 평등 공존의 가치 실현을 위해 기여한 게 거의 없다. 말과 실생활이 정반대인 위선의 삶을 살아오면서, 좌파권력 네트워크가 창출하는 이권에 기생해 특권을 누려왔다.


하지만 정의연을 비롯한 위안부 인권활동가들은 30년 넘게 생업을 포기한 채 이 문제에 헌신했다. 위안부 문제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생명권, 인권 문제다.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고, 세계가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게 된 데는 이들 단체의 공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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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단체를 이끌어온 윤미향 전 이사장이 자신을 조국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대응이었다. 진보나 여성인권을 위해 실제론 조금의 자기희생이나 투자도 하지 않은 인물과 스스로를 같은 부류에 놓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정의연의 솔직하고 투명한 설명을 촉구하는 대다수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정의연과 같은 생각을 갖고 지지해온 일반 국민이다. 그런 국민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 회계에 문제가 있었다면 깨끗이 반성하고 시정하면 된다. 횡령 같은 개인비리가 아닌 한 대다수 국민은 다시 힘을 실어줄 것이다.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보수진영도 회계 문제 이상으로 확대시켜 위안부 인권 운동 전체를 매도하거나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훼손시켜선 안 된다. 일제의 강제동원 사실마저 부정하는 극우 인사들이 다시 발호할 멍석을 깔아줘선 안 된다.

1990년대 초중반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잇따르면서 위안부 문제가 본격 외교문제로 대두될 당시 필자는 주무 기자 중 한 명으로 강제동원의 참상을 생생히 접했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될 당시도 특파원으로 주무 기자였다. 일본군이 네덜란드인 여성까지 위안부로 끌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돼 당시 호주에 거주하던 84세의 피해 여성을 인터뷰했다. 그녀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거주하던 19세때 일본점령군에 의해 강제 수용소에 수용됐다가, 21세 때 군 위안부 수용소로 끌려가 어떤 참상을 겪었는지 생생히 들려줬다. 강제동원이 없었다면 네덜란드인 할머니를 포함해 그 수많은 피해자들이 다 허구를 들려줬다는 말인가.

윤 전 이사장은 “미래통합당과 친일언론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다짐했다. 언론이 회계불투명성을 비판한다고 해서 모든 보수언론이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해 친일논조를 폈던 것처럼 주장한다면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필자가 ‘위안부’라는 검색어로 1990년부터 지난달까지 동아일보의 모든 기사를 검색해보니 근 30년간 3352건의 기사와 칼럼이 게재됐다. 전부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대부분은 일본군 강제동원의 실상을 밝히고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2007년 당시 미 의회에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기적같은 일이었다. 미국 내 일본의 로비력은 상상도 하기 힘들만큼 막강했으나 뉴욕한인유권자센터, 워싱턴정신대대책협의회 같은 현지 교민 단체들이 수년에 걸쳐 미 의원들을 상대로 풀뿌리 유권자 운동을 펼친 힘이 컸다.

당시 감탄했던 게 교민들의 열성도 열성이지만, 철저하고 투명한 조직운영이었다. 의회상대 로비가 가능한 정치단체여서 더 엄격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1달러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을 만큼 회계 투명성을 지켰다. 당국의 감독과 보고 의무가 워낙 엄격해 피곤하다는 하소연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물론 윤 전 이사장 등이 친일파 운운한 것은 자기 방어 차원에서 나온 신경질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진짜 한심스러운 대목은 김두관 의원을 비롯한 여권의 친일파 프레임 짜기 행태다.

여당은 총선 압승 직후 겸손 모드를 통해 무게감과 책임감 있는 면모를 풍겼다. 그런데 김두관류의 낡은 친일 프레임 공세는 자신들이 여전히 ‘찌질한 구시대 좌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외치는 듯한 모양새다.

최근 이광재 당선자, 청와대 대변인 등이 문재인 대통령을 태종 세종 등에 비유하자 문비어천가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필자는 태종 세종 비유를 들었을 때 아부 아첨 차원을 넘어선 집권세력의 집요한 욕구를 느꼈다.

즉 새 왕조를 열듯 나라의 틀을 바꾸겠다는 욕구다. 이 정부 출범 후 교과서와 헌법 등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고 하고, 건국 기점을 바꾸려는 그런 모든 시도들에는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한미동맹, 경쟁·효율 중시 등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질서와 역사 해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욕구가 깔려 있다. 총선 압승이 그게 가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케케묵은 친일 프레임 전략에 의존하는 행태는 이들이 그런 ‘재건국’을 이룰 역량을 갖추기는커녕 여전히 이념 편향적인 아마추어 386집단 수준에서 탈피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산사태처럼 터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갖 실정(失政)이 묻히고, 야당복(福) 전임자 복(福)이 겹친 게 총선 압승의 본질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정의기억연대#위안부#윤미향#강제 동원#친일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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