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없어지는 세상… ‘디지털 흔적’ 악용 막으려면[광화문에서/김유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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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이태원 특정 클럽을 다녀간 ‘숨은 클러버’ 찾기가 한창이다. 이들이 남긴 디지털 흔적이 단서다. 클럽 근처 기지국에 접속한 휴대전화 통신 기록을 바탕으로 무려 1만905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까지 일괄 확보됐다.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했지만,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개인 움직임도 샅샅이 꿰뚫어볼 수 있으리란 점도 여실히 체감했다.

코로나19로 이런 모습이 부각됐을 뿐 이미 우리는 매 순간 디지털 흔적을 곳곳에 뿌리고 있다. 무언가를 검색하며 생각의 흐름을 남기고 소셜미디어를 하며 취향과 인맥을 드러낸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하며 소비 패턴을 짐작하게 하고,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쓰며 가족과의 대화를 스피커 회사에 고스란히 보낸다.

초연결 사회에서 디지털 흔적 하나하나가 데이터 자원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낳기도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맞춤형 광고를 노출해 특정 상품을 구매하게 하고 유권자에게는 특정 정치인을 선호하도록 유도하거나 여론을 조작할 수도 있다. 영국 정치 데이터업체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가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 명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넘겨받아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을 지원한 게 단적인 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이런 위험을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 자신의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찜찜해하거나 심지어 부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서비스 혜택에 선뜻 정보를 내어준다. 이른바 ‘프라이버시 패러독스(privacy paradox)’다. 구글이 지메일 상단에 자신이 선호할 만한 광고를 삽입하리라는 걸 알지만, 그게 꺼림칙해 지메일을 포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짜 서비스를 받아들이고 개인정보 수집에 기꺼이 동의한다. 사람들의 이런 속성으로 프라이버시를 완벽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이제 허상에 가깝게 됐다.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 개인정보 보호보다는 공동체의 안전과 안녕이 우선시되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데이터가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했을 때 벌어질 위험성을 경계해야 하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로 근접 (over the skin) 감시에서 내부까지 들여다보는(under the skin) 감시 체제로 바뀌었다. 빅브러더가 일상화되는 등 전체주의적인 감시가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개인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해 디지털 통제사회의 일면을 보여준 중국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데이터 유출·노출 자체를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데이터 악용·오용을 막으려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국가나 기업이 우리 데이터를 훤히 들여다보듯 우리도 그 과정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해서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폐기하는지 알아야 하고, 데이터에 접근하고 수정을 요구할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상황별로 어디까지 데이터를 공유해야 할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아직은 낯설지만 중요한, 데이터의 민주적 사용에 대한 질문을 코로나19가 미리 던져줬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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