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공수처장, 대통령의 ‘인생 인사’여야 한다[오늘과 내일/정원수]

정원수 사회부장 입력 2020-05-13 03:00수정 2020-05-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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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전문가 추천 절차 인정과 야당 비토권 존중이 성공 요건
정원수 사회부장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고, 청렴성과 공정성이 투철하며, 풍부한 법률 지식과 행정 능력을 갖춘….’

대한변호사협회가 올 3월 16일 전국 2만3000여 회원들에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초대 처장 후보를 추천해 달라며 보낸 메일 내용 중 일부다. 이 문구만 보면 마치 전지전능한 법률 전문가를 찾는 것 같다. 게다가 임기 3년을 고려한다면 만 62세 미만, 15년 이상 경력의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조건이 까다롭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퇴직한 지 3년이 지나야 한다.

추천 단계에서부터 “할 만한 사람이 고사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지난달 10일까지 1차 추천을 마감한 결과 변협에 접수된 명단은 두 자릿수에 불과했다. 변협은 7일 첫 회의를 했지만 아직 후보군의 면면은 베일에 싸여 있다. 당사자의 동의와 추가 추천, 검증을 거쳐야만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장은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6부 요인을 모두 수사할 수 있는 자리다. 행정부 소속인 검찰총장과 달리 공수처장은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다. 또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은 공수처장에게 수사에 관한 보고나 자료 제출 요구, 지시나 의견 제시를 일절 못 하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공수처장 인사가 공수처의 성패를 좌우할 준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수처가 독립성과 중립성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공수처장 인사 과정에서 다음 두 가지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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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야당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공수처장 추천위원은 7명인데,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변협 회장 외에 여야 교섭단체가 각각 2명을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추천위원 7명 중 6명이 동의해 후보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한 명을 임명하는 구조다.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거나 야당 몫 1명과 전문가그룹 1명이 다수에 맞서면 인사 절차가 멈추게 된다. 처장의 제청으로 차장이 임명되기 때문에 처장이 없으면 공수처의 사무를 지휘할 1, 2인자가 없는 불임 조직으로 남게 된다.

법관 출신의 변호사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부 당시 김황식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로 발탁할 때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반대 성향의 양승태, 김명수 대법원장 인사청문 당시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장을 맡아 인사 검증을 원만하게 해낸 경험도 있다. 야당의 비토권 인정이 아니라 추천권까지 주더라도 일방적인 인사를 고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변호사단체의 광범위한 추천과 자체 검증을 존중해야 한다. “누가 되든 변호사단체 회원 중의 한 명”이라고 하는데, 그 단체의 의견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행히 변협 추천 과정에서도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은 후보가 일부 추천된다고 한다. 미국도 연방대법관 등 중립성이 요구되는 법률가를 추천할 때는 가장 먼저 변호사단체의 의견을 듣고, 그렇게 추천된 인사는 의회의 인사 동의로 이어지는 전통이 있다. 국회 규칙으로 공수처 추천위 세부 절차를 정할 예정인데, 변협의 후보 추천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1801년 존 마셜을 연방대법원장에 지명했다. 이후 마셜은 연방대법원의 위상을 정립한 인물로 추앙받았다. 애덤스는 숨지기 전 그 인사를 회고하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행동(the proudest act of my life)’이었다”고 했다고 한다.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생 목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문 대통령이 훗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초대 공수처장 인사를 해야 공수처가 성공할 수 있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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